뉴스현장에서 취재보도를 하다 보면, 나를 포함해 기자들은 때때로 자신의 보도가 독자들에게 잘못된 생각을 넣어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깜빡한다. 『나의 보도태도는 올바른가』를 자문하지 않고 「나의 판단」에만 매달리거나 독자가 주목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선정주의와 상업주의의 유혹에 손들 때도 있다.지난 주 국회청문회가 시작됐다. 많은 사람들이 전날 TV로 청문회 증언장면을 보고 다음 날 신문에서 그 증언내용을 다시 읽으며 자신의 평가와 신문의 평가를 비교하기도 했을 것이다. TV를 보느라 퇴근길이 늦어져서인가, 「옷로비」청문회 마지막 날인 25일 수요일밤 서울거리는 늦게까지 골목골목까지 막혔었다. 파업유도청문회보다 옷로비청문회가 더 큰 화제였다. 한나라당 사이트(hannara.or.kr)는 재빨리 「국민의 정부에는 호피코트만 있습니다」라고 비꼬았고 한 외국신문(thetimes.co.uk)까지 「모피게이트(furgate)」운운하는 기사를 실었다.
그 외국신문에 따르면 김대중대통령은 언론의 상업주의에 「격앙하였다」. 기사의 비중뿐 아니라 「네 여인 거짓말 생존게임」류의 제목이나 증언자들의 입만 클로즈업한 사진들을 생각하면 항변하기 어렵다. 순간을 포착해 클로즈업한 증언자들의 입은 인격이 말살돼 보이는 끔찍한 것이었다.
기자들은 편견을 드러냈다. 전문가 대접하기도 잊었다. 차림과 행동거지가 남 다르다고 한 디자이너를 폄하해 보도한 것은 옳지 않다. 「본명은 김봉남, 고향은 구파발이라고 하자 폭소, 증언 후 의원들에게 일일이 악수하여 또 폭소」식 보도는 전문가를 대접하자는 평소의 언론주장에 위배된다. 세계화시대라고 서양식이름 갖기운동, 에티켓운동을 스스로가 외쳐왔다는 것을 깜빡한 듯하다. 기자의 기호가 어떻든, 옷으로 30년간 외교관들을 매혹시킨 전문가는 대접해야 옳다. 이브생로랑(yslonline.com)이 그렇게 폄하된 것을 본 일이 있는가.
강도높게 언론을 비판하는 전북대 강준만교수는 유명하다. 나의 친구들도 다른 언론학교수 이름은 모르지만 그의 이름은 안다. 딴지일보(ddanji.netsgo.com)는 응답조사의 「그렇다」를 「그러췌」로 쓰는등 속어와 비어투성이인 인터넷신문이지만 독자가 많다. 언론보도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독자」가 아니라 기사를 해석 평가하는 「비판적 수용자」가 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비판적 수용자」를 두려워하는 보도자세가 필요하다.
/박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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