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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열심히 잘못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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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열심히 잘못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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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08.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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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얕본 때가 있었다. 한국경제가 빚으로 쌓아올린 「거품」인 줄 모르고서 말이다. 학계는 미국이 쇠퇴하리라는 갖가지 「설(說)」을 내놓았고 정부는 한국이 「중심국가(中心國家)」가 되어 아태(亞太)시대를 연다는 장밋빛 비전으로 맞장구쳤다. 환란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지금은 환상처럼 들린다. 그러나 그 때는 정말 서세동점의 시대가 막을 내린다고 믿었다.한국적 기준에서 볼 때 미국교육체계는 근면하고 성실한 노동대중을 키우기 힘든 「놀이터」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돈을 벌면 일단 쓰고 보는 미국인의 소비문화는 국가재정을 거덜내고 무역적자를 악화시키는 족쇄로 인식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 미국이 지금은 자신의 구미에 맞게 동아시아지역의 구조조정을 이끌어가고 있다. 저축하지 않고 공부하지 않는 「베짱이」가 별안간 「개미」로 변신하였기 때문은 아니다. 미국은 여전히 적당히 놀고 적당히 일하는 사회이다.

더 혼돈스러운 것은 우리 자신이 처한 상황이다. 한국인은 미국인보다 더 열심히 살아온 민족이다. 고등학생은 여전히 학교가 끝나면 봉고차에 실려 학원으로 달려가고 대학생은 젊음을 바칠 비장한 각오로 고시에 매달린다. 근로자는 돈을 벌 수만 있다면 언제든지 근무시간을 연장하고 휴가까지 내놓을 태세이다. 경영자는 퇴근이 없다. 가정을 버리고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매일 밤 관계 및 정계인사와 「끈끈한」 인간관계를 다지고 지원을 구할 만큼 일 자체가 삶이다.

심지어 환란을 불러일으킨 지배층마저 게으름을 핀 적이 없다. 정치인은 지역구를 훑고 다니면서 온갖 경조사에 얼굴을 내밀고 수많은 민원인을 상대하기에 바쁘다. 재벌총수 역시 「세계경영」의 기치 아래 인생의 절반을 비행기에서 보내고 호텔에서 지내며 새로운 판로를 뚫기에 안간힘을 쓴다.

그런데 그 결과는 보잘 것 없다. 한국젊은이는 미국젊은이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지만 국가적 학문의 수준은 여전히 미국에 미치지 못한다. 그렇게 열심히 돈을 긁어모으려고 노력하지만 경제는 동남아 오지에서 발생한 환란의 전염병에 맥없이 무너질만큼 부실하다.

무엇 때문인가.

본래 「생산성」은 일에 대한 열정에 비례하지 않는다. 하물며 노동한 시간만큼 늘어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되지 않는 일에 매달리면 힘만 소진되고 자원만 낭비하고 만다. 오직 생산적인 일에 전념할 때에만 생산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이 평범한 진실을 잊고 종종 되지 않는 일에 전력투구하곤 한다.

미국젊은이가 정보화시대에서 최상의 가치인 창의성을 키울 때 우리 학생은 사지선다형 문제를 풀기 위한 「암기」에 전념하고 있다. 다국적자본이 장사가 되는 일에만 투자할 때 우리 재벌은 치밀한 계산없이 부채를 끌어다 마구 공장을 세웠다. 그러다 빚에 쪼들려 파산의 위기를 맞자 다시 이 은행 저 은행을 열심히 기웃거리고 온갖 무리수를 다 쓴다. 그러나 애초부터 부실투자인 탓에 부채는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으로 늘어만 가고 재벌은 그 부채에 비례하여 더욱 더 열심히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돈을 구하고 판로를 찾는다.

정치인 역시 「열심히」 「잘못」 살기는 마찬가지이다. 중진실세든 소장파든 혈연과 학연 및 지연으로 뭉친 사조직을 챙기고 지역구민원을 처리하기에 바쁘다. 게다가 언제 어디서 헤쳐모이기식 정계개편이 벌어질 지 몰라 이 계파 저 계파 모임에 얼굴을 내밀고 줄을 대느라 날을 지새다시피 한다. 당연히 생산적인 정책논의에 나설 겨를이 없다. 「사람 만나기」로 살 길을 모색하다보니 정책은 뒷전이다.

우리는 열심히 잘못 살고 있다. 한국인이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내실없이 바쁘기만 한 삶이 계속되고 만다.

김병국/고려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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