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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의 한순간](23) 노혜경 '뜯어먹기 좋은 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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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의 한순간](23) 노혜경 '뜯어먹기 좋은 빵'

입력
1999.08.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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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경 시집 「뜯어먹기 좋은 빵」빵을 먹으면 평화도 먹는다

「보라, 천주의 어린 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고요히 달려들어 내 살점을 뜯어라/ 신음도 없이/ 비명도 없이/ 이토록 잘 차려진 성찬// 먹어라, 영생을 주는 피와 살이니/ 적의 적의 그 적의 심장을 먹듯/ 흐르지 않는 피/ 고여 있는 시간// 말씀의 살점을 저며/ 은쟁반에 새로운 목을 얹고/ 나는 짓는다/ 나만의 새 집을」(시 「높이 쳐들린」 전문)

「뜯어먹기 좋은 빵」이 결코 「뜯어먹기 쉬운 빵」은 아니더라고 누가 내게 우스갯소리를 한 적이 있다. 거기를 잘 누르면 빵이 절로 벌어지는 그런 배꼽 같은 무엇은 없나요, 노혜경 아줌마?

그런데 참 난감하다. 빵이라는 게 원래 아무렇게나 뜯어먹는 것 아닌가? 어쨌거나, 이 시가 바로 그 배꼽이라고_실은 수많은 배꼽 가운데 한 배꼽이지만_할 수 있겠다. 내 시집 「뜯어먹기 좋은 빵」의 한복판에 있는 시이니까.

이 시에서 선포된 사건과 이미지들은 내 시집 전체를 통해 되풀이되고 변용된다. 우선 식인(食人)의 모티프. 우리가 죽여버린 예수를 우리 구원의 양식으로 삼는 역설. 그리고 나를 먹을 것으로 내어주는 적극적 사랑의 모티프. 저며져서 은쟁반에 담기는 낡은 피의 역사, 말로 짓는 새 집들. 레이스 마을. 그리고 여자.

생의 최고의 비참은 배고픈 것이고 목마른 것이다. 빵을 먹는 자는 평화도 먹는다. 그러니 육체보다 더한 영혼의 배고픔을 잠재울 수 있는 양식이 있다면 누군들 탐하지 않으리? 지나간 이천 년 동안 성체(聖體)라는 이미지는 인간의 인간에 대한 증오, 살인과 식인의 두려움이라는 은쟁반 위에 올려 놓았던 영혼의 양식이었다. 그러나 이 양식은 세자 요한의 목을 벤 살로메처럼, 지극한 사랑의 역설로 저며지지 않으면 나의 집일 수가 없다.

위 시에서 볼 수 있듯이 「뜯어먹기 좋은 빵」은 이미지들이 곧 사유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그러한 이미지들로 가득 찬 시집이다. 그러니 반드시 뜯어먹어야만 한다. 통채로 삼키려 들거나 적당히 자르면 안된다. 빵을 뜯어낼 때의 제멋대로인 그 결이 바로 당신 나름의 사유이니까.

노혜경 시인은 91년 「현대시사상」으로 등단했고, 95년 첫 시집 「새였던 것을 기억하는 새」(고려원 발행)를, 최근 두 번째 시집 「뜯어먹기 좋은 빵」(세계사 발행)을 냈다.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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