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에 있어 20세기는 고난의 시기다. 이기백 한림대 명예교수가 책임편집하는 학술지 「한국사 시민강좌」는 20세기 마지막호인 제25집에 우리 민족의 몸부림을 20세기 10대 사상이란 이름으로 정리했다. 학자 1명이 사상 하나씩을 맡아 집필한 책이다.민족적 고난기에 한국인의 마음을 사로 잡은 것은 민족주의(이만열 숙명여대 교수 집필)였다. 일제시대에는 국권회복운동, 해방 후에는 자주독립국가 건설과 민족통일운동의 사상적 중심이 됐다. 사회진화론(최기영 서강대 강사)은 원래 생존경쟁과 적자생존을 표방한 것으로서 제국주의의 침략을 뒷받침하는 이론. 그러나 19세기 말부터 한국에 수용되어 개인에 앞서 국가와 민족의 단결을 강조하는데 이용되면서 도리어 민족주의를 뒷받침했다. 사회진화론을 토대로 실력양성론(박정신 미국 오클라호마주립대 교수)이 대두했다.
자유민주주의(송복 연세대 교수)는 임시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 국가 운영의 기본 틀. 공산주의(한홍구 서울대 강사)는 저항민족주의에 대신할 지도이념으로, 민족독립운동의 수단으로 수용됐다는 특성이 있다. 아나키즘(이호룡 서울대 강사)은 개인의 절대 자유를 추구해 무권력·무지배의 사회를 건설하자는 주장이다. 이상촌 건설운동 등으로 나타났다. 사회민주주의(김기승 순천향대 교수)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입장을 조정해 좌우연합을 통해서 민족해방을 이루고, 통일민족국가를 수립하려던 이념이다.
60년대에 관심을 끈 근대화론(김경동 서울대 교수)은 주로 경제성장을 주축으로 한 것이었다. 경제개발 위주에 대한 반성으로 정치·사회 선진화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했다. 민중문화운동론(이기동 동국대 교수)은 근대화론을 비판하면서 등장했다. 60년대 참여문학론으로 출발해 70년대에는 인문·사회과학 분야로 확산되고 87년 6월 항쟁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북한의 지도사상인 주체사상(신일철 고려대 명예교수)은 민족주의의 인상을 풍기지만 사실 계급투쟁설에 입각한 계급독재라는 교조주의와 김일성 개인숭배가 섞인 것이다.
이기백 교수는 『공산주의에서 아나키즘에 이르기까지 20세기 한국의 사상은 한결같이 민족주의와 관계 있다』면서 하지만 가치판단의 절대 기준을 민족에 두는 민족주의와 민족사랑은 다르다고 말했다.
서사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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