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청문회」가 심각한 무기력증에 빠졌다. 법사위의 「고가옷 로비의혹사건」조사에 이어 국정조사특위의 「조폐공사 파업유도사건」조사에서도 청문회는 실체적 진실 규명에 한발짝도 다가서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청문회 무용론」마저 고개를 들고 있다. 「파업유도 청문회」는 김태정(金泰政)전검찰총장에 대한 증인신문(31일), 진형구(秦炯九)전대검공안부장 및 강희복(姜熙復)전조폐공사사장에 대한 재신문(9월3일)등을 남겨두고 있으나 사정이 나아지리라는 기대는 할 수 없는 형편이다.청문회의 총체적 부실화는 추궁하는 의원들과 답변하는 증인들이 똑같이 책임을 져야 할 합작품이라는 지적이다. 26일부터 계속되고 있는 파업유도 청문회에 나온 증인들의 답변 태도를 보면 한마디로 「국회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증인들은 자신에게 조금만 불리하다 싶으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잘 모르겠다』『내 소관사항이 아니다』고 회피했다. 26일 증인으로 나온 강전사장은 검찰에서의 진술과는 다른 증언을 하면서도 「법적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교묘한 줄타기를 했다. 『진전부장으로부터 구조조정을 하라는 「압력」을 받기는 했으나 조폐창의 조기통폐합은 결국 자율적으로 결정한 것』이라는 이중적 증언을 한 것이 대표적 예.
27일 증언했던 진전부장은 더욱 노골적으로 「일단 이 자리만 모면하고 보자」는 답변 태도를 보였다. 포위망을 좁혀 오는 야당의원들의 질문엔 부인이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답변으로 일관했고 여당의원들의 유도성 질문엔 장황하게 변명을 늘어 놓았다. 위증시비를 불러 일으킬 소지가 있는 질문엔 아예 답변을 회피하는 노회함을 보이기도 했다. 검찰, 경찰, 기획예산위 등의 실무자 증언은 자신들의 조직보호 이외에는 아무것도 안중에 없다는 듯 거의 「앵무새」수준에 가까웠다.
증인들의 보호막을 전혀 뚫고들어가지 못하는 여야의원들의 요령부득이한 역량도 문제다. 검찰 등 권력기관의 출석기피나 자료제출 거부 등으로 진실규명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일부 의원들의 행태는 「해도 너무한다」는 비난을 받기에 충분하다. 논리와 근거로 결정적 증언을 이끌어 내기 보다는 결론을 단정한 야당의원들의 정치공세성 질문은 여전했다. 한나라당 김영선(金映宣)의원은 걸핏하면 「대통령」을 걸고 넘어지면서 「핏대」를 올렸고 한영애(韓英愛)의원 등 국민회의 의원들은 청와대 관련 얘기만 나오면 국민회의 의원들은 앞뒤 가리지 않고 소란을 피웠다.
여야 의원들 모두 언론보도를 의식,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만 늘어 놓고 답변은 아예 무시하는 경향도 여전했다. 김문수(金文洙)의원 등 야당의원들은 일부 참고인을 불러놓고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답변을 줄줄이 유도, 청문회장을 「정견 발표회」로 만들었고 박광태(朴光泰)의원 등 여당의원들은 정부를 옹호하는 유도성 질문을 남발, 눈살을 찌프리게 했다. 조영재(趙永載)의원 등 일부 자민련의원은 자신의 지역구를 의식, 옥천조폐창의 원상복구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모습을 보였다.
국정조사가 바로 서기 위해선 우선 의원들의 자세가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또 증언회피나 위증처벌을 강화하는 등 청문회 관련법의 개정여론도 거세다. 의원들이 외부 전문가들의 조력을 받을 수 있는 길을 터놓고 국정조사 활동에 압수수색 등 일종의 준사법적 기능을 부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고태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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