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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터뷰] 김희로 석방주역 박삼중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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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터뷰] 김희로 석방주역 박삼중스님

입력
1999.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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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년 상영된 영화 「김(金)의 전쟁」의 실제 주인공 김희로(71)씨가 31년간의 일본 형무소 복역을 중단하고 내달 7일 가석방돼 조국으로 영구 귀국한다. 재일한국인 차별에 격분, 일본 야쿠자를 살해하게 된 과정이 한편의 영화였다면 석방과정 또한 한편의 영화다. 하지만 후속편엔 주인공이 바뀌어야 한다. 「사형수의 아버지」, 「재소자의 대부」등의 별칭을 얻어온 박삼중(朴三中·부산자비사주지)스님은 바로 그 후속편의 주인공이다. 박삼중스님은 『아직 김씨가 귀국한 상태가 아니어서 결론짓기가 이르지만 전쟁의 최종 승리자는 결국 김씨가 될 것 같다』면서 김씨의 석방 전후과정에서 숨겨진 이야기들을 가감없이 털어놨다.-김씨의 석방운동에 15년이나 매달린 것으로 알려졌는데 소감이 어떻습니까.

『처음 일본 교도소측으로부터 김씨의 가석방 방침을 전해들었을 땐 너무 놀라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습니다. 매달, 어떨 땐 한달에 세 번이나 형무소를 들락거릴 정도로 혼신의 힘을 다했습니다. 김씨가 일본을 상대로 「전쟁」을 치렀다면 저는 김씨를 상대로 전쟁을 치른 셈입니다. 이젠 여한이 없습니다』

-석방을 앞둔 김희로씨의 심경은 어떠했습니까.

『그의 정신적 지주이자 일생의 등대였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만큼 앞으로 어머니를 위한 추모사업에 여생을 바치겠다고 말했습니다. 일생의 절반 이상을 교도소에서 보내는 등 평생 어머니의 애간장을 끓게 했던 불효한 과거에 대한 속죄와 반성을 위해 조국에서 봉사활동에 전념하겠노라고 저에게 눈물의 약속을 했습니다』

-김씨의 석방에 결정적 도움을 준 숨은 조력자가 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당사자에게 의사를 여쭤보지 않아 공개하기가 매우 조심스럽지만 사실 김씨의 석방에는 정해창(丁海昌·61) 전 법무장관의 조력이 핵심역할을 했습니다. 많은 재일동포와 국민들이 서명에 동참하는 등 성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일본 법무당국을 상대로 한 설득 작업에는 그들을 움직이고, 신임케 할만한 여러 배경이 필요했습니다. 정 전장관이 바로 그런 환경을 제공했습니다. 공식·비공식채널을 통해 일본측의 의중을 꿰뚫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김씨의 석방을 애타게 기다리던 어머니 박득숙(朴得淑)씨가 지난해 11월 타계해 일본측이 가석방결정을 너무 늦게 한 게 아닌가 하는 시각이 있습니다.

『석방이 늦게 된 건 김씨가 그동안 「전쟁」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교도소내에서 자나 깨나 복수심에 차 있었습니다. 일흔을 넘는 노인인데도 그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밖에 나가면 나는 다시 과거(인질극)로 돌아가겠다」고 공공연히 말했습니다. 당연 행형성적이 나쁠 수 밖에 없고 이런 그를 일본측이 풀어줄 리 만무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그가 「전쟁」을 포기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어머니의 죽음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그의 모든 것은 무너졌습니다. 평생 변함없는 사랑과 헌신을 보내준 그의 삶에 유일한 희망이자 불빛이었던 어머니의 죽음은 「31년간의 전쟁」조차 단번에 함몰시킬 정도로 충격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부디 한국에 돌아가서 편히 살아라」라는 어머니의 유언에 따르기로 최종 결심한 것입니다』

「전쟁」의 포기는 김씨 개인적으로는 패배가 아닐까요.

-『역설적이지만 저는 그의 승리로 봅니다. 어머니의 타계 이후 그는 유언에 충실하기로 인생관을 완전 바꿨습니다. 당연 형행성적이 몰라보게 좋아졌고 교도소측도 진작 이랬으면 벌써 나갈 수 있었다고들 말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법무당국이 김씨의 석방방침을 세운 이후 석방의 마지막 관문격으로 김씨에게 제출을 요구한 각서내용은 모두 일본측이 요구한 것 들입니다. 「나는 다시 일본으로 돌아오지 않으며, 밖에서 조용히 살겠다」는 등이 그 내용입니다. 일본측은 김씨가 「전쟁의지」를 완전히 꺾지 않은 것으로 본 것 입니다』

-향후 김씨의 국내 생활과 관련, 계획이 있다면.

『걱정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사실 그는 야쿠자 살해사건 이전부터 여러 사건에 연루돼 20년간을 복역한 바 있어 전체 복역기간이 무려 52년이나 되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앞으로 「조국」에 돌아온다면 멋진 제2의 인생을 살게 해야 하는데 요즘 이런저런 걱정 때문에 뜬 눈으로 밤을 세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산=목상균기자

sgmok@hk.co.kr

약력

32년 서울 출생 경주 불국사 재무국장(60년) 전남 구례 화엄사 주지(61년) 경북 용연사 주지겸 대구교도소 포교사(67년) 전국교도소 교화후원회장(80년) 불교도 갱생보호위원회장(85년) 건국대 행정대학원 수료(87년)

한일불교복지협회장(92년) 사단법인 한국화랑청소년육성회총재(94년)

저서

(96년),

(99년)등 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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