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평생을 남자로, 또 남의 이름으로 살아왔던 50대 여인이 뒤늦게 자신을 찾기 위한 법정투쟁을 시작했다.돌림자인 「종」자를 따라 김종환(金鍾煥·58)이란 이름을 부모로부터 받은 여인이 「남자」로 바뀐 것은 공무원의 실수 때문. 김씨의 출생신고 서류를 보관하고 있던 전북 정읍군이 한국전쟁 당시 불타버린 호적을 새로 정리하면서 김씨의 이름만 보고 남자로 기록해버린 것이다.
군대 영장이 나와 곤욕을 치른 것은 그렇다치고, 사랑하는 남자를 만났을 때는 정말 가슴이 아팠다. 62년 정모(59)씨를 만나 결혼을 했지만 호적상 남자인 김씨는 실제로 남자인 정씨와 혼인신고가 불가능했다. 69년 장남(36)을 초등학교에 보내야 했을 때 김씨는 가족들과 상의 끝에 「세상을 떴지만 사망신고가 안된 상태인 친척 언니 김복순」의 이름을 빌려 남편 정씨와 혼인신고를 했다.
그러나 「김복순」씨는 남편보다 나이가 16살이나 많아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들 부부를 이상한 시선으로 보았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부모님 주민등록등본을 떼오라고 할 때마다 남모를 고통을 겪어야 했다. 선거 때는 선거관리위원들이 주민등록증과 김씨를 대조하며 문제를 삼아 얼굴 뜨거워지는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동안 몇차례 구청과 동사무소를 찾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허무한 대답만 들었던 김씨는 뒤늦게나마 호적을 바로잡기 위해 법원에 혼인무효확인소송부터 냈다. 김씨는 29일 서울가정법원으로부터 『69년 정씨와 「김복순」씨가 전북 임실군 강진면장에게 신고한 혼인은 무효』라는 판결을 받았다. 김씨는 이 판결을 근거로 자신의 호적을 여자로 정리하고 새로 혼인신고를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박일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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