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절망의 귀농 실태/초보농사꾼은 '봉'이었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절망의 귀농 실태/초보농사꾼은 '봉'이었다.

입력
1999.08.30 00:00
0 0

쌓여만가는 부채, 농축협 통합협상으로 어지러운 지원체계, 되풀이되는 수마의 고통, 예정된 쌀시장 개방…. 끝없는 절망의 수렁에서 IMF이후 실직의 아픔을 딛고 고향을 찾았던 귀농자들은 지금 농사일을 계속해야 할지 도시로 다시 돌아가야 할지, 귀로에 섰다.97년말, 7년간 근무하던 H자동차 협력업체에서 실직 당한 신완철(申完鐵·34·경기 연천군 연천읍 동방리)씨. 퇴직금과 전세금까지 털어 지난해 2월 귀농한 신씨를 기다린 것은 매몰찬 현실이었다. 『귀농자금을 대출하러 농협에 갔더니 「죽으면 누구한테 돈 받느냐」며 보증인을 요구하는 것은 물론, 연고지가 아니니 생명보험까지 들라고 강요하더라구요』 마지못해 생명보험까지 들며 우여곡절끝에 대출을 받아 시작한 양계업은 곧 벽에 부딪혔다. 갑자기 닥친 수해는 닭 4만마리가운데 3만마리를 가져갔고 4,000만원의 빚만 남았다.

의정부에서 개인사업을 하다 부도를 내고 지난해말 경남 함양읍 구룡리로 귀농했던 김모(42)씨. 귀농정책자금을 지원받아 돼지를 키워볼까 했으나 지원조건이 까다로워 포기하고 사채를 얻어 양돈업에 나섰으나 빚을 갚기는 커녕 생계비 자체도 나오지 않자 5월 함양을 떠났다. 결국 5,000만원의 빚만 늘려 다시 도시로 찾아온 그는 현재 막노동을 전전하며 귀농자체를 후회하고 있다.

전기기사 출신으로 연천에 터를 잡았던 김정국(金政國·30)씨의 사정도 비슷하다. 97년말부터 하루 3~4시간 밖에 못자고 키워온 닭들은 닭값폭락으로 엄청난 손해를 안겼고 이번 수해는 재기의 기력마저 앗아갔다.

「봉」으로 통하는 귀농 1·2년차가 당한 수난 사례는 숱하다.

명문 K대를 졸업하고 굴지의 금융회사에 다니다 지난해 2월 강원 정선군으로 귀농한 정모(30)씨. 지난해 6월 배추파종을 하자 말자 몰려든 「거간꾼」들이 정씨에게 제시한 값은 포기당 2,000원. 초심자 정씨는 대량구매의 유혹에 선뜻 계약했으나 강원도 고랭지에서 재배된 배추 정상가가 최소 4,000원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귀농자체에 대한 환멸에 빠져들었다. 밭 2,000평에 대한 토지세와 종자값, 인건비를 제외하고 농협빚 1,000만원만 고스란히 떠안았다.

「큰 일」이 없어도 농사는 수지맞는 사업이 아니다. 10여년간 억척같이 모은 전재산 3억원을 털어 2년전 안성시로 귀농한 차모(39)씨는 지난해 논 3,000평과 밭 600평 등 모두 4,000여평의 농사를 지어 1,000여만원의 수입을 올리는데 그쳤다. 벼농사에서 660만원, 오이와 열무재배를 통해 각각 250만원과 150만원을 벌었다. 투자액 3억원의 기회비용은 물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허리가 부러지도록 고생한 인건비조차도 건지지 못한 셈이다.

구조조정의 뒷전에 놓인 농촌에서 귀농자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오히려 자신들의 무지다. 선거공약에만 살아있는 농촌정책의 허상을 뚫어 보지 못했고 지원책들은 언제나 다시 발목을 잡는 족쇄에 불과하다는 사실. 위정자들은 정치계산과 주도권다툼에만 골몰할 뿐, 농촌의 피폐상이나 11월부터 시작되는 세계무역기구 협상을 돌아볼 겨를이 없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는 한탄이다.

배추농사 2년차 정씨는 서울로 직장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결국 경기가 살아나는 도시로 갈 수밖에 없을 것같아요』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노원명기자

narzi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