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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고 싶은 여자가 되라/읽다보면 어느새 페미니즘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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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고 싶은 여자가 되라/읽다보면 어느새 페미니즘 공감

입력
1999.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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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적·이론적 페미니즘, 「죽이고 싶은 여자가 되라」 「60년대 말, 저녁 식사후에 명망있던 의과대 부장이 나를 불러 연구비 문제를 의논하면서 나를 강간하려 했습니다」 「70년대 초에는 한 사회학 교수의 성적(性的) 접근을 끝까지 거부했더니, 연구원을 시켜 나의 첫 저서를 혹평하게 하더군요」 필리스 체슬러(60) 박사.작가이자 심리치료사, 뉴욕시립대 심리학 및 여성학 교수인 체슬러가 97년 쓴 「죽이고 싶은 여자가 되라」는 독특한 책이다. 탁상공론의 페미니즘 이론서가 아니다. 읽다보면 어느덧 페미니즘 속에 빠져 있음을 실감케되는 자전적 에세이다. 마치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듯 솔직한 문장들은 격문이라도 읽은 듯한 후련함을 선사한다.

자신부터가 가부장적 제도의 전형적인 희생자였다. 성(性)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하며 높은 교육열로 자신을 들볶았던 어머니, 때론 자신에게 폭력까지 휘둘렀던 아버지. 그러나 그녀는 의도적 반항의 길을 택했다. 립스틱 바르고 재즈 클럽을 출입하면서 스스로 「죽이고 싶은 여자」로 거듭났다.

성적 쾌락은 인간의 권리다, 낙태는 살인이 아니다, 페미니스트는 진정으로 평등한 가족을 원한다등 이 책은 우리 시대 페미니즘의 실천론들을 요령있게 정리했다.

한국 독자는 흠칫 놀랄지도 모르겠다. 「성고문은 사람을 타락시키고 불구로 만들며, 자기 증오와 자기 파괴를 초래한다」는 대목 때문이다. 페미니스트들이 자유를 향해 돌진해 나가는 동안, 「여성상」을 스스로 저버렸다는 책의 비판은 이른바 투사적 여성상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의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내가 나를 존중하듯이 타인의 삶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1928년 버지니아 울프는 여자에게는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체슬러는 거기서 더 나아간다. 자신의 직업이 있어야 한다고.

그녀는 다양한 직함을 갖고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미국 시민 성학대사건 전국보호부모센터」 이사장, 전문지 「페미니즘과 심리학」, 「국제저널」의 자문위원으로 일하면서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여성운동에 대한 강연을 하고 있다. 유대인 여성의 종교적 권리를 대변, 이스라엘 법정에 소송을 제기하기도 한 뜨거운 여성이다.

『단 한 사람의 여성이라도 도와주려면, 자신이 먼저 강해져야 한다』는 게 그녀의 결론이다. 원제는 「젊은 페미니스트에게 보내는 편지」. 이광용 수원여대 영어과 교수가 옮겼다. 제삼기획刊.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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