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지난해 9월1일부터 고정환율제와 외환거래 통제 등 극단적인 「금융쇄국」정책을 실시한 말레이시아의 성적표가 나왔다. 최종평가는 아직 이른 감이 없지 않지만 환율·물가·주가지수 등 경제지표상으로는 지난 1년간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올 2·4분기 국내총생산(GDP)의 경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1% 성장했으며 끝없이 치솟기만 하던 실업률과 인플레율도 각각 3%선에 머물고 있다. 내수가 살아나면서 국내외 자본의 신규투자도 증가세로 돌아섰다.말레이시아 중앙은행인 뱅크 네가라의 알리 압불 하산 이사는 25일 회견을 통해 최근 수 개월간의 경제지표 변화를 토대로 『이제 지난 15개월간의 경기침체는 끝났다』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그는 『말레이시아의 경제 여건은 이제 불안한 외부 요인에 대처할 수 있을 정도로 안정적』이라며 올해에는 마이너스 성장을 끝내고 1% 이상의 성장목표를 달성할 것으로 전망했다. 1년전 외환거래 통제가 「경제 고립」을 자초, 자멸하는 무리수가 될 것이라는 국내외의 우려와 비난과는 달리 말레이시아 경제가 건재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의 경제회복이 18년째 집권 중인 마하티르 모하메드 총리(73)가 주장해 온 「아시아적 가치론」의 유효성까지 입증해주는 것은 아니다. 투기성 해외자본의 논리와 마찬가지로 제도가 아닌 인물이 지배하는 정치구조는 결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말레이시아 경제를 낙관하기는 아직 이르다. 9월부터 외환통제정책이 어느 정도 완화될 경우 지난 1년간 묶여있던 국채, 주식, 부동산 매각 대금이 일시에 해외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으며 이렇게 되면 1년전보다 더 심각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일각에선 말레이시아 주식시가 총액의 20%(810억달러)가 해외투자자 지분이므로 9월중 최대 60억 달러이상이 빠져나갈 것이란 우려섞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역시 가장 큰 변수는 다른 개발도상국과 같이 경제외적인 요인, 특히 마하티르 총리의 장기집권에서 비롯된 정치·사회적 불안정 구조다. 통일말레이민족연합(UMNO)등 친 마하티르 연립여당인 국민전선이 총 192석의 의회의석중 163석을 확보하고 있지만 이같은 구도가 계속 이어질런지는 속단키 어렵다.
따라서 말레이시아식 경제정책의 성공 여부는 1차적으로 외환통제 완화이후의 자본 흐름으로, 궁극적으로는 정치·사회적 변수까지 고려한 중·장기적 관점에서 평가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장현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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