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로(金嬉老·71)씨 석방은 한편의 드라마였다.일본 정부가 석방 의사를 밝힌 것은 지난 5월 31일. 법무성 교정당국자는 김씨의 후견인 역할을 해온 박삼중(朴三中·부산 자비사 주지) 스님에게 『스님의 끈질긴 교화노력에 감복했다』며 『양국관계 발전을 위해서도 석방키로 했다』고 통보했다.
일본 정부는 석방과 동시에 일본을 떠난다 일본 재입국은 절대 않는다 이후 일본에 대해 부정적인 얘기를 하지 않는다 등의 조건을 내세웠고 김씨는 이같은 내용의 자술서를 썼다. 『석방되면 일본에 남아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신념을 접고 『이 순간부터 일본을 용서한다』고 다짐했다.
일본 정부는 기밀유지를 거듭 당부했다. 일본 우익의 반발과 야쿠자의 보복, 사건의 확대 등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번 일본 정부의 석방결정에는 삼중 스님 등 한국과 일본의 양심적 인사들의 탄원이 크게 작용했다.
이후 절차는 숨가쁘게 진행됐다. 법무당국은 6월 29일 김씨를 변장시켜 항공편으로 구마모토(熊本)형무소에서 도쿄의 후추(府中)형무소로 극비리에 옮겼다. 삼중 스님은 생전에 아들을 보지 못하고 작년 11월 92세로 별세한 어머니 박득숙씨(朴得淑)의 유해가 안치된 가케가와 초후쿠지(長福寺)측과 논의, 유해도 모셔오기로 했다. 김씨와 모친의 유해가 동시에 귀국하게 된 것이다.
김씨는 9월7일 가석방과 동시에 항공편으로 도쿄에서 부산 김해공항으로 직행한다. 이날 한국행은 극도의 보안 속에 이뤄진다. 야쿠자와 우익단체가 김씨가 석방되면 바로 보복살해하겠다고 공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정몽준(鄭夢準·무소속)의원이 마련해준 부산 모처의 아파트에서 고희를 넘긴 나이에 제2의 인생을 시작할 계획이다. 그의 고국생활은 불우이웃을 위해 조용히 봉사하는 나날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이미 석방에 앞서 경주 나자레원에 거주하는 일본인 할머니들과 광주 나눔의 집에 사는 한국인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에게 5만엔씩의 성금을 기탁한 바 있다.
/부산=목상균기자 sgm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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