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수준의 대학원 육성을 위한 「두뇌한국21」(BK21) 사업 「인문·사회분야」가 무원칙한 사업비 나눠먹기로 변질됐다.교수들로 구성된 「BK21 인문사회 분야 추진위원회」(위원장 박준서 연세대 부총장·신학)는 25일 사업시안을 발표, 지원대상을 한국학·문화·동아시아·정보지식기반사회·사회발전 등 교육부 원안의 5개 분야에서 전분야로 확대했다. 한 사업단의 규모도 참여교수 수를 당초의 20명 이상에서 최소 3명 이상으로 대폭 축소했다.
이에 따라 5개 분야별로 2개 사업단 정도를 골라 사업단마다 매년 8억∼12억원씩(연간 총 100억원) 7년간 집중지원하는 대신, 지원분야는 200여개까지로 늘어나는 반면 지원액은 연간 1억원 내외로 크게 줄어들게 됐다.
특히 추진위원 12명에는 신학, 철학, 독문·영문학, 심리학 분야 교수까지 끼여 있어 『IMF 시대에 신학과 철학, 외국문학에 까지 국가예산을 집중지원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비난이 일고 있다.
추진위가 만든 이 안은 BK21 사업이 많은 교수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히자 교육부가 인문사회 분야는 학계에서 새로 사업안을 내도록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시안은 25∼26일 공청회를 거쳐 내달초 최종안으로 확정된다. 과학기술 분야는 교육부 원안대로 추진, 이달말 사업자 발표를 앞두고 있다.
특히 이번 시안은 대학 정원 감축 타대학 출신자에 대한 대학원 문호개방 교수 업적평가제 등 지원조건으로 반드시 이행해야 하는 제도개혁을 거의 받아들이지 않아 『돈만 받고 말겠다는 것이냐』는 비난도 많다.
학계에서는 『이런 식으로 나눠먹기를 할 바에야 모든 인문사회 분야가 공통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국학 인프라(토대) 구축에 집중투자하는 편이 낫다』는 주장이 거세지고 있다. 연세대 사회학과 유석춘 교수는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가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일세를 풍미한 데는 17∼19세기 고문서같은 「국학」자료를 손쉽게 활용할 수 있었던 데도 이유가 있다』며 『고전 한문자료를 활용하지 못하는 현대 학문은 영원히 수입학문에 머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광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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