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5월30일 새벽 6시30분 서울역 지하도의 광경은 내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전날 IMF체제로 인한 실업자 재취업 훈련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자 전국 18개 기능대학의 교학처장, 관리부장 회의를 개최했다. 회의 참가자들은 실업자의 고통을 함께 하고 가까이서 체험함으로써 보다 실질적인 훈련방안을 강구하기 위해 이날 서울역 노숙자의 실장을 직접 살펴보기로 한 것이다.내 평생 이런 광경을 접한 적이 있었던가. 서울역은 이미 지하도 입구에서부터 사방으로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고 마치 수용소를 연상시킬 만큼 전너편 지하도까지 많은 노숙자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신문지와 담배꽁초, 빈 소주병과 깡통, 음식 찌꺼기 등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 틈 사이로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신문 한장 달랑 덮고 잠들어 있는 사람, 부시시 눈을 뜨는 사람, 술에 취해 비틀대는 사람, 그릇 하나에 이것저것 섞어 주섬주섬 먹고 있는 사람. 말로만 듣던 노숙자들의 비참한 실상이 바로 거기 있었다. 우리 모두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왜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토록 비참한 노숙자가 되었단 말인가. 노숙자의 대부분이 단순 서비스나 막노동에 종사하다 자리를 잃자 가정을 책임질 수 없다는 사실이 괴로워 집을 뛰쳐나온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우리 대학이 이들에게 기술을 가르쳐 자립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날부터 구체적인 대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도움으로 노숙자 직업훈련과정을 춘천기능대학에 개설하기로 결정하고 단순 노동자가 기술을 습득할 수 있도록 개설직종은 전기 용접 기계 등으로 정했다.
하지만 훈련생 모집부터 어려움은 너무 많았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7월 1차로 10명의 노숙자가 입소했고 9월에는 70명으로 인원이 늘어났다. 낯선 곳에 경계심을 가진 노숙자들은 자신의 신분을 밝히기를 꺼렸고 단체 음주 등으로 통제하기 힘든 때도 많았다. 또 절도나 폭행 등의 사건이 발생하면 주위의 의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을 늘 가족같이 대하는 등의 노력으로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52명의 노숙자가 국가 기술자격증을 취득하고 전원 취업할 수 있었다. 150㎝의 키로 평생 놀림만 받다 자격증을 두 개나 따 취업한 노숙자는 후에 감사편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98년 그 날, 나는 인생에서 일자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끼게 되었다. 일자리를 갖도록 하는 직업훈련이 개개인은 물론 국가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따라서 현대 국가라면 취업의 권리를 국민 행복추구권의 핵심사항으로 보장해 주어야 할 것이다.
/최송촌·학교법인 기능대학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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