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가 넘쳐나고 있다. 정보산업의 발달로 생활공간이 네트워크상으로 이동하면서 본인 확인을 위한 수많은 비밀번호가 양산돼 비밀번호관리가 새로운 골칫거리로 등장했다. 개인정보유출을 막기위해 만든 비밀번호가 오히려 개인을 압박하는 정보사회의 딜레마를 낳고있는 셈이다.업무상 인터넷을 자주 이용하는 회사원 김모(27)씨의 일상은 비밀번호로 넘쳐난다. 출근후 김씨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컴퓨터를 켜고 회사 시스템에 들어가는 것. 지시와 결제등 업무가 모두 시스템상에서 이뤄지는 탓에 회사 비밀번호 관리는 필수다. 증권투자를 위해 들어가는 주식거래 사이트, 점심시간을 이용해 짬짬이 이용하는 채팅사이트에도 각각 다른 비밀번호를 운용한다.
김씨는 핸드폰, 삐삐 등의 메시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뿐 아니라 통장과 신용카드, 심지어 아파트 현관의 카드키까지 10여개의 비밀번호를 머리속에 넣고 다녀야 한다. 정기적으로 비밀번호를 바꾼다는 「보안의 원칙」은 무너진지 오래다.
한국통신 하이텔 고객센터에 따르면 하루에 비밀번호를 물어오는 문의건수만도 100여건. 하이텔과 달리 무료로 운영되는 인터넷 사이트들의 비밀번호관리는 더욱 허술해 비밀번호를 잊어버리거나 심지어는 도용당하는 사례도 빈번히 일어난다. 이에 따라 정보통신업계에선 비밀번호를 잊어버렸을 경우 본인임을 확인할 수 있는 질문 한가지씩을 준비하는 고육책을 내놓았지만 이 역시 그리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늘어난 비밀번호를 관리하기위한 묘안도 가지각색. 인터넷 사이트 6곳과 PC통신 핸드폰 삐삐 통장과 신용카드등 11개의 비밀번호를 가진 대학생 최모(22)씨는 비밀번호에 등급을 두어 관리한다. 신용카드 이메일등 극히 보안을 요하는 사항은 영문과 한글이 결합된 복잡한 비밀번호를, 나머지는 네자릿수의 간단한 비밀번호로 통일했다. 회사원 서모(34)씨는 비밀번호를 적어 항상 몸에 지니는 지갑에 넣고 다니는 방법을 택했다. 그러나 얼마전 지갑을 잃어버린 서씨는 실종신고와 함께 비밀번호를 일일이 변경하느라 진땀을 뺐다.
수치에 약한 이모(33)씨는 비밀번호가 헷갈리면서 겪은 곤욕때문에 주민등록번호 뒷자리수 4개로 통일했다. 이씨는 『허허실실작전이지만 유출될 경우를 생각하면 끔찍하다』고 말했다.
경찰청 컴퓨터수사대 관계자는 『비밀번호가 필요없는 지문인식시스템이나 홍채(虹彩)인식시스템 등이 개발되고 있지만 아직은 대중화하지 않았다』며 『비밀번호와 관련된 사람들의 혼란은 당분간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한국정보보호센터의 한 관계자는 『무엇보다 자신의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정보에 대해선 자신이 책임진다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충고했다.
김영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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