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악재에 휩싸인 증권가에 10년전 악몽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아졌다. 당시 투신권은 주가가 오르기만 하면 매물을 내놔 찬물을 붓곤 했다. 안정책으로 나온 「12·12조치」는 두고두고 증시를 억눌렀고, 증시를 떠난 돈은 부동산 거품을 일으키며 6공 최대의 경제실정(失政)을 초래했다. 10년 뒤, 부양책이 당부와 자율결의란 완곡어로 대치됐을 뿐 경험은 반복되는 모습이다.23일 70여개 금융기관장이 달라진게 없는 내용을 다시 만장일치로 결의하고 나왔다. 이런 공식모임은 대우사태 이후 세번째지만 흔적이 없는 「전화관제」는 셀 수 없이 쏟아지고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을 믿어야 하는 시장도 그 손이 정부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보아온 관행이고, 정부의 선의를 의심하는 사람도 없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시간이 갈수록 시장에는 선의만으로 되는 일이 없다는 믿음이 생겨나고, 다시 루머가 돌고 있다. 다행히 이날 주가는 폭등세를 보였다. 무디스의 신용등급 상향조정검토라는 호재가 없었다면 주가는 금감위 「겉치레 행사」탓에 하락할 기세였다.
투신권과 은행권은 물론 일반 투자자들도 정부가 구체적 방법도 없이 시장개입만 일삼는다고 한다. 시장개입에 한목소리로 물음을 제기하고 있다. 원칙없이 「잔꾀」에 매달린다는 것이다.
지금 시장은 혼란이 와도 미봉책이 아닌 판을 새로 짜는 대우해결의 대원칙이 나오기를 고대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 처방은 고단위가 불가피하고, 사회적 비용도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주저하는 이유는 자신감이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문제의 심각성을 몰라서일까. 시장은 이를 궁금해 하고 있다.
이태규 경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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