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다리리, 추운 길목에서/ 오랜 침묵과 외로움 끝에/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볼 때/ 어느 겨울인들/ 우리들의 사랑을 춥게 하리/ 외롭고 긴 기다림 끝에/ 어느 날 당신과 내가 만나/ 하나의 꿈을 엮을 수 있다면」시인 신현림씨가 최근 낸 산문집 「희망의 누드」(열림원 발행)에는 정희성 시인의 시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의 일부가 인용되어 있다. 취미로 하던 사진을, 이제는 일가를 이뤄보려고 대학원에서 공부까지 하고 있는 신씨는 이 시 옆에 프랑스 사진작가 사라 문의 사진 한 장(사진)을 붙였다. 79년 미국의 캘린더에서 따온 이 사진의 주제는 「빛으로 충만한 황홀감」.
발랄한 상상력이 담긴 시들을 쓰고 있는 신씨는 시집 두 권, 영상 에세이집 한 권을 이미 냈다. 이번 산문집도 실은 사진 에세이집이라 해서 크게 틀리지 않을 성 싶다. 시와 사진을 결합시키고 재즈와 대중 가요와 사진을 연결시키면서 신씨는 자신의 세상 살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들에 대한 생각을 편안하게, 때로는 거리낌없이 풀어 놓았다.
「희망의 누드」는 생경하면서 뛰어난 이미지를 간직한 국내외 사진작가들의 작품 사진과 감동적으로 만나고, 또 그들의 작품을 시나 음악 등 다른 창작과 연관시켜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경제학자였지만 자신이 쓰던 경제 논문보다도 사진이 더 뛰어난 전달 매체임을 알아채고 중남미를 돌아다니며 가난과 고립 속에서 살아남은 인디오를 찍고, 기아와 싸우는 아프리카인들을 찍은 브라질 사진작가 세바스티앙 살가도. 「라이프」지의 일원이면서 불안정한 삶과 두려움 속의 신비감을 포착한 미국 사진가 마크 코헨. 우아함과 아름다움이 넘치는 패션 사진의 개척가 데이비드 사이드너. 그리고 강운구, 김중만, 구본창, 최민식씨 등 한국 사진작가. 50여 편에 가까운 산문은 글마다 이렇게 인상적인 사진 한 장씩을 품고 있다.
신씨는 5월의 봄날 천안을 지나 도고온천으로 가는 길목에서 마주한 풍경을 보고 「희망의 누드」라고 이름지었다. 그리 별다를 것 없이, 늘 그 자리에 그대로 있던 자연이었지만 그 날의 풍광은 시인의 마음 속에 가능성을 비춰준 불빛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허위의식 없는 세상을 꿈꾸며 「누드」라는 말을 붙였다. 산문집에는 가식 없는 세상을 꿈꾸며 솔직하고 건강하게 살려는 그의 소망이 글 사이 사이에 담겨 있다.
김범수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