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아니라 생활의 측면에서, 이제 그만 낭만적인 감정을 가져볼 때도 된 것 같은데, 그러지 않는 걸 보니, 스스로 짜증스런 생각이 든다. 내가 나를 못살게 굴고 들볶고 가만 좀 있게 내버려두지 않는 게 어쩌면 내 생활의 성격이고, 취미일 것이다. 이런저런 일로 평소에, 스스로를 「이중 구속의 상황」으로 마구 몰아간다.글을 쓰는 데에도 그런 구석이 있다. 저번에 그런 글을 썼으면, 마치 강박관념처럼, 이번엔 전혀 다른 글을 써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딴에는 그런 걸, 내가 쓴 것을 애써 찾아 읽는 이들에 대해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보답이라고 느끼면서. 그래도 지난 네 권이 서로 아주 다르지는 않은 걸 보니, 내 짧은 열 손가락도 어쩔 수 없는, 본원적인 무엇이 있는가 보다.
장편 「불쌍한 꼬마 한스」(현대문학 발행)도 그런 식의, 이를테면 그 직전에 썼던 글들에 대한 반작용이었던 듯 싶다. 「불쌍한…」을 쓰기 직전까지, 그러니까 「목화밭」 연작에서, 나는 좀 심하다 싶게 노골적인 것들을 다루고 있었던 것이다. 「선함」 「희망」 「진화」에 대한 언급이 「불쌍한…」에 그토록 자주 나오곤 했던 것은 그 전작(前作)에 대한 반성이기도 했고, 싫증이거나 혐오이기도 했고, 스스로 「진화」하려는 노력일 수도 있었다.
물론, 「불쌍한…」을 읽어본 이라면 짐작하겠지만, 여러 가지 신상의 이유도 있었다. 그 책의 어조가 그리 따뜻해질 수 있었던 데에는, 글쓰기의 측면보다는 실은, 신상의 이유가 더 컸다. 「선함」과 「희망」 그리고 「진화」에 대한 이야기들은, 내가 나 자신에게 들려주는 얘기들이었다. 다른 누구보다도 내게 더 필요했던, 나 자신에게 더 절실했던. 책의 작가 후기에도 썼지만 「불쌍한…」은 그러니까, 「내가 읽고 싶어서」 썼던 책인 것이다. 다른 어느 누구가 아니라.
그래서 그 책을 내준 출판사에 지금도 감사하고 있다. 많이 변했다고들 하지만 아직은, 작가가 쓰고 싶은 것을 마음껏 쓸 수 있는 환경이 남아있다. 내 이전의 책들도 그랬지만, 「불쌍한…」도 그런 환경이 아니라면 절대로 출간되지 않았을 책이었다. 이것도 내겐 「희망」이다.
소설가 백민석씨는 95년 「문학과 사회」로 등단했고, 장편 「헤이 우리 소풍간다」 「내가 사랑한 캔디」 등과 작품집 「믿거나 말거나 박물지」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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