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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역사적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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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역사적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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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08.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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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일상적 이해의 바탕 위에서 진행되기도 하고 역사의식과 역사적 이해를 동력으로 하여 진행되기도 한다. 전자는 「일상적 정치」이고 후자는 「역사적 정치」이다. 「일상적 정치」는 일상적 권력을 바탕으로 사사로운 일상적 이해관계의 틀안에서 정쟁(政爭)의 형식으로 전개된다. 이에 반해 「역사적 정치」는 진보에 대한 높은 역사적 관심으로 사사로운 이해와 정쟁에 초연한 차원에서 국민의 역사의식에 의지하여 수구세력과의 역사적 대결의 형식으로 전개된다.『전쟁이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이라는 클라우제비츠의 통설이 타당한 경우에는 전쟁도 정치와 마찬가지로 「일상적 전쟁」과 「역사적 전쟁」으로 구별할 수 있다. 그런데 「역사적 정치」든 「역사적 전쟁」이든 역사적 목표가 선명치 않아 역사적 구분이 모호한 상태에서는 일상적 권력에만 의지해야 된다.

그러나 일상적 권력이란 쉽사리 사사로운 이해에 휘말려 상대화되는 법이다. 이 때문에 역사적 목표를 안으로 은폐한 채 일상적 권력에만 의지하는 역사적 정치와 전쟁은 실패하고 만다. 실패하지 않으려면 이 정치와 전쟁을 역사적 대결형식으로 재조정해야 할 것이다.

링컨은 남북전쟁에 승리하여 노예제도 철폐의 역사적 과업을 달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좀더 가까이 살펴보면 이 전쟁은 처음에 「일상적 전쟁」으로 시작되었다가 중간에 「역사적 전쟁」으로 전환되어 수행된 전형적인 전쟁이다. 링컨은 개인적으로 노예제도를 혐오하였을지라도 전초(戰初)에 전쟁목적을 노예제도 폐지가 아니라 흔한 인디언 반란을 대하듯 「반란군 토벌」로 내세웠다.

따라서 애초 분위기는 노예해방과는 거리가 멀었고 역사적 대치선은 모호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하여 초반 2년 동안 북군은 패전을 거듭했다. 링컨은 이 지경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전쟁목적을 「노예해방」으로 공언함으로써 남북전쟁을 바야흐로 「역사적 전쟁」으로 전환시켰다. 이때부터 북부는 역사적 사명감으로 사기가 충천한 반면, 남부에서는 노예들이 탈주하는 일이 벌어졌다. 동시에 프랑스가 북군을 적극 지원하기 시작하였다. 이 덕택에 링컨은 곧 전세를 역전시켜 역사적 과업을 이룰 수 있었다.

유사한 예는 지난 정부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문민정부의 헤게모니를 가진 민주계는 기대와 달리 신군부와 연대한 채 초기의 개혁정치로부터 점점 멀어졌다. 이와 함께 문민정부는 불가피하게 일상적 정쟁에 휘말리게 되었고 이 정쟁에서 점차 크고 작은 부상을 입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95년 6·27 지방선거에 크게 패하였고 이 선거에서 야당의 승리에 힘입어 창당된 국민회의에 내몰린 채 15대 총선에 직면하였다.

이런 일상적 정쟁의 궁지에서 민주계는 관심을 역사로 돌려 신군부와의 관계를 전격적으로 단절함으로써 단번에 정국을 「역사적 정치」의 차원으로 전환시켰다. 이것은 신군부와의 의리를 저버리는 일이었지만 국민, 언론, 야당은 일단 역사적 관심으로 전환되자 이런 사사로운 문제에 초연했다. 당시 문민정부는 이 역사적 정치를 통해 역사상 최초로 「쿠데타역사」를 바로 세우는 데 성공하였고 총선에서 국민으로부터 보너스를 받았다.

우리는 이 두 개의 멀고 가까운 예화(例話)를 깊이 통찰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일부 여론주도층과 국민은 IMF위기와 새 천년의 역사적 과업을 잊은 채 다시 일상적 이해와 정쟁의식에 매몰되고 있다. 의식있는 국민은 이 일상적 정쟁에 벌써 신물나 있고 정부·여당은 크게 부상당했다. 그런데 정부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대체로 역사적 차원의 일들뿐이다. 이 일들의 역사적 의미를 국민 앞에 선명히 하지 않은 채 일상적 권력과 정책 각론으로 이 일들을 해낼 수 있을 지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 황태연 동국대 교수·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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