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이즈미트를 진앙지로 소아시아 반도를 뒤흔든 대지진으로 터키는 순식간에 목불인견(目不忍見)의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대충 확인된 사망자가 3,500명을 넘고 무너진 집더미에 매몰돼 있는 사람이 1만명이 넘는다니 4년전 일본 고베 대지진보다 훨씬 큰 피해가 예상된다. 적잖은 한국인들이 터키에 거주하고 있고 또 여행중인 사람도 많은데 한국인 인명피해가 보고되고 있지 않은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렇다고 안도만 할 일은 아니다.지진은 자연재해 중에서도 가장 참담한 재앙으로 방재(防災)시스템 마저도 마비시켜 버리기 때문에 그 후유증이 깊고 오래간다. 더구나 지진의 규모나 국력으로 볼 때 터키가 이 비극을 혼자 감당하기에는 벅차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구조대를 보내고, 원조를 제공하기에 발벗고 나서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우리나라도 당연히 구조와 복구대열에 참여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의 터키지진 대책을 보면 참으로 한심하다. 외교통상부가 고작 미화 7만달러(한화 8,500만원)를 원조하기로 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 체면에도 안맞는 소액이다. 오죽했으면 이 문제에 관여하는 공직자들마저 겸연쩍어 할 정도일까.
터키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의 일원으로 파병해서 우리를 도와준 혈맹이다. 터키군은 한국전에서 치열한 전투로 많은 희생자를 냈고, 그때 입은 부상으로 지금도 병상에 누워있는 사람도 있다. 툭하면 의리를 내세우는 우리가 어떻게 이런 나라에 얄팍한 체면치레로 끝낼 수가 있는가.
터키는 우리의 외교전략상으로도 중요하다. 아시아와 유럽을 걸치고 있는 회교국으로서 제3세계 외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국제무대에서 우리는 서방 선진국과 중국 러시아에 편향된 외교로 제3세계에선 언제나 낯선 존재로 남아 있다. 재난을 당한 나라를 도와주는 것은 인도적으로도 당연한 일일 뿐 아니라, 외교적으로 알게 모르게 한국의 이미지를 제3세계에 좋게 부각시킬 수 있는 기회다.
우리는 체면치레도 안되는 원조액의 1차적 책임은 외교통상부에 있다고 본다. 무사안일과 강대국 위주의 국제관계에 매달려온 결과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외교통상부는 터키원조가 우리의 국력과 한국과 터키관계에 걸맞는 수준이 되도록 정부의 입장을 재조정하는데 나서야 한다.
우리나라는 국제관계로 먹고사는 나라이다. 경제성장에 발맞춰 변방국가의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면 정부가 재난피해국을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게끔 예산과 체제를 갖춰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