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적」이라거나 「좌경적」이라는 첫 반응이 나오더니, 이회창 한나라당총재는 『도대체 김대통령의 이념적 지향점은 무엇인지 국민은 매우 불안해 하고 있다』고 회견에서 주장했다.김대중대통령의 8·15경축사를 두고 다시 불거진 색깔논쟁의 시작이다. 재벌개혁의 방법을 주로 문제삼았지만, 국가보안법 개정이나 대북한 정책 등을 싸잡은 공세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색깔론은, 사실은 논의제기 자체가 흘러간 시절의 노랫가락 같다. 제기해서 몰아붙이기만 하면 반사이득이 돌아오는 일이어서, 정치권에서 자주 애용되어 온 카드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또 한번 제기된 색깔론이 그같은 계산을 바닥에 깐 것이라면, 그야말로 타기할 악습이고 시대역행이다. 적어도 새 밀레니엄 정치를 구상하는 21세기 지도자가 걸어야할 대도(大道)와는 거리가 있다. 색깔을 덧칠하고 그것부터 앞세우려는 태도는 너무나 구시대적이고 진부하지 않은가. 정책을 대안으로 내놓고 공론을 주도하는 야당지도자의 모습이 훨씬 더 신선할 것이다.
「금세기 마지막 8·15」로 인식된 올 8·15 경축사는, 지금 날이면 날마다 개혁의 후속 각론들을 쏟아내고 있는 중이다. 그 대부분은 공론을 거쳐 바쁘게 체화(體化)해야 할 사안들이다. 정부도 정치도 경제인도 바쁘지만, 국민도 더 바쁜 계절이다. 당리당략같은 시대역행적인 일들을 감시하고 가려내는 임무가 국민에게 있기 때문이다.
8·15 사흘 전인 지난 12일 국회를 통과한 재외동포법은 또 다른 시대 역행의 사례이다. 해외에 이주해 살고 있는 재외동포에게 출입국, 체류, 금융, 연금 등에서 내국인과 거의 동등한 지위를 부여하자는 이 법은 우선 적용대상인 재외동포를 「차별」하고 있다는 점이 바로 시대역행적이다. 전체 재외동포 550만 가운데 절반 가까운 동포가 제외된, 「반쪽」 입법의 저의를 도저히 알기 어렵다. 이른바 조선측 중국동포(200만), 구 소련지역 동포(50만), 무국적 재일동포(15만) 등 모두 265만명의 동포를 외면한 재외동포법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특히 옛 만주땅과 시베리아, 중앙아시아로 흩어져간 동포의 대부분은 독립투사의 후손이거나 독립운동의 기반이 되었던 한민족 디아스포라, 바로 그들이기 때문에 국망(國亡)과 식민지, 분열의 민족사를 매듭짓고 새 천년을 맞이해야하는 대전야(大前夜)에 그들을 제외한 재외동포법을 만들었음은 이유가 어떻든 역사에 죄스러운 일이다.
교민정책이 있어야 한다면, 교민들이 거주국 시민으로 뿌리박고 잘 살아가도록 멀리서 돕는 것이 최선이다. 『잘 사는 집에 시집간 딸만 자식이냐』며 냉소를 보내는 동포들의 농성을 불러내는 이런 법은 없으니만 못하다.
그러나, 「금세기 마지막 8·15」인 올해 이같은 시대역행적인 일들만 벌어졌던 것은 결코 아니다. 1999년 8월에 가장 잊을 수 없는 「거사」는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위한 전국 대학교수 10,000인 서명이라는 긴 이름의 이벤트였다.
친일인명사전은 친일파의 행적을 자료로 남겨 역사에 그 책임을 묻고 우리 사회에 올바른 가치관을 세우겠다는 것이 그 편찬의 뜻인데, 편찬지지교수 서명운동에 나선지 두달 보름만에 전국에서 10,000명의 서명을 돌파했다는 것이다. 편찬을 주도하고 있는 민주문제연구소 측은 「10,000명 서명」을 가리켜 『한국사회에서 이제 진정한 혁명이 시작되었다』고 흥분하는 회견을 가졌다. 우리나라 지식영역 담당자들인 인문사회계열교수 거의 전원이 의견의 일치를 이루어지낸 것은 정권교체 차원의 일을 뛰어넘는 엄청난 변화라는 것이다.
『과거를 잊어버린 민족에는 미래가 없다』고 한다. 해방직후 반민특위의 실패로 우리는 「단 한번도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 역사를 반성하고 평가해 본 일이 없는 민족」으로 살아오게 되었다는 것이 이 인명사전의 편찬이 추진된 이유의 하나다.
서명운동에는 중국 옌볜지역에서 780명의 교수가 참여해서 단일지역 최대인원으로 기록된 것이 특기할만 하다. 그들을 대표한 옌볜대학교 민족문제연구원장 최홍빈교수는 장문의 「성원서」를 보내 『우리 민족의 역사가 깨끗하게 정리되지 않고서는 우리 민족의 새로운 21세기는 희망이 없을 것』이라고 썼다.
친일인명사전은 과거를 응징하자는 것이 아니라 잊지 말자는 것이다. 결코 시대를 역행하는 것이 아니다. 『잊을 수 없다. 그러나 용서할 수는 있다』가 「금세기 마지막 8·15」가 남긴 평화의 메시지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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