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마당 한켠 장독대에 살그머니 다가가 손으로 무언가를 잽싸게 낚아채고 있다. 소년은 낚아챈 것을 땅바닥에 내동댕이 친다. 파리가 파르르 떨며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걸 보는 소년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파리는 병균을 옮기는 해충이라는 선생님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파리잡이는 즐기운 놀이이자 좋은 일을 한다는 자부심마저 주었다.파리 잡던 그 소년은 내 어린 시절의 모습이다. 나는 청년기를 지나 중년에 이르고도 갖가지 시행착오와 허물에서 벗어나지 못한 삶을 살았다. 장년에 접어들어 조금씩 자신을 돌아보는 마음가짐을 갖게 되었다. 그때부터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를 돌아보는 명상을 시작했고 하루를 지내면서 저지른 허물에 대한 자책과 개선을 위한 다짐을 한다.
이 세상 모든 생물은 하루살이 곤충에 이르기까지 혼을 지니고 있으며, 저마다 영성을 닦기 위하여 지구에 온 유학생임을 명상을 통해 깨닫게 된 어느 날 밤. 어린 시절 파리잡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하찮은 것일지라도 기억의 창고에는 빠짐없이 기록되기 마련이다.
수많은 파리를 잔인하게 죽인 행위에 대한 죄책감이 엄습해 왔다. 먹이 사슬에 의한 생명유지에 필요한 양을 벗어난 살생은 하늘의 이치에 크게 어긋나는 행위이다. 그날 이후 나는 창문에서 빠져나가지 못해 애쓰는 파리를 보면 창을 열어주거나 조심스레 잡아서 날려보낸다. 힘찬 날갯짓으로 날아가는 파리를 보면서 지난날의 잘못을 다시 한번 속죄할 기회를 갖게 된다. 안도의 미소를 짓게 된다. 들길이나 산길을 걸을 때면 곧잘 발밑을 살피곤 한다. 행여 개미라도 짓밟히면 어쩌나, 나무뿌리를 밟을까 마음쓰게 된다.
누구든 자신이 저지른 행위를 지울 수 없는 노릇이다. 쏟아진 물이다. 쏟아진 물은 그냥 흘러갔거나, 스며들거나, 증발해 버린 것 같지만 언젠가는 비가 되어 다시 돌아온다. 씨앗을 만나면 싹을 틔운다. 이처럼 자신의 과오를 반성한 후 진정한 마음으로 실천에 옮기면 선과를 거둘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매일 저녁 반성의 명상시간에 나는 「이 세상 만생만물을 내 몸같이 사랑하리라. 더불어 닦음, 나눔하리라」고 다짐한다.
/김동평·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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