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터키에서 금세기 마지막 개기일식을 관측한 한국과학기술원 오준호교수가 일식 당시 상황과 감동을 담은 참관기를 보내왔다. /편집자주터키 중부의 해발 900m 고원도시 시바스. 정오를 향하는 태양은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하늘을 영원히 점령해버릴듯 단단하고 힘차고 뜨거웠다. 태양필터 덕에 아름다운 밝은 오렌지빛 해가 눈에 들어왔다. 흑점이 검버섯처럼 군데군데 얼룩져 있고 한 귀퉁이는 베어먹힌 듯한 모습이었다. 부분식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조금 지루한 한시간이 지나자 주위는 눈에 띠게 어두워졌다. 해는 쨍쨍 내리쬐는데 전혀 뜨겁지가 않았다. 마치 회색 선글라스를 통해 본 세상같이 차갑고 주변이 꿈을 꾸듯 현실감이 없다. 빛이 가속적으로 빨려들듯 사라져가는 순간 시간감각도 사라지고 본영(本影)의 접근을 예고하는 서늘함이 감돌았다. 실낱같은 빛이 새어 나온다고 느끼는 것도 잠시, 수초만에 점광(点光)은 사라졌다. 누구인가 외치는 「토털 이클립스(Total Eclipse)!」라는 탄성에 주변은 고요로 빠져들었다. 고대인들은 일식을 검은 태양이라고 불렀다. 바로 검은 태양이었다.
입을 뗄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암흑 원체를 감싸고 역광처럼 비치는 코로나는 지글지글 타오르며 살아있는 마그네슘 화륜(火輪)이었다. 홍염과 후광으로 검은 얼굴 주변을 치장한 태양은 하늘을 밝힐 힘을 잃었다. 금성이 초롱초롱 한뼘 떨어진 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갑자기 어두움을 맞은 눈은 암(暗)적응이 되지 않아 칠흑속에서 허우적거렸다. 멈춘 듯한 시간 속에 나의 손가락은 정신없이 카메라의 자동셔텨만 눌러대고 있을 뿐 무감각해져 있었다. 정신을 가다듬으려 해도 감각이 돌아오지 않는다. 이때 갑자기 한순간 검은 태양 우측으로부터 아크용접광이 뿜어져 나왔다. 개기일식의 백미로 불리는 다이아몬드 링 현상이었다. 그 아름다움을 말과 글과 그리고 사진 몇장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나는 수많은 자료와 아름다운 일식사진을 보면서 오늘의 감동을 예비해 왔었다. 그러나 내눈으로 확인한 것은 바로 충격 자체였다. 2분11초간 일식됐던 태양은 황홀한 금강석 반지를 선물로 내주면서 다시 밝음으로 돌아왔다. 나는 큰 숨을 내쉬며 다시 주변의 술렁임 속으로 들어갔다.
오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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