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처럼 자원봉사제도가 열악한 나라도 없는 것 같다. 물론 학교급식 마련에 어머니들이 자원봉사자로 많이 참여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며, 급식업체에 대한 무언의 감시자라는 긍정적 효과도 있다. 그러나 이웃과 사회를 위해 진정 헌신하는 자원봉사자가 우리나라에 얼마나 있을까. 만일 우리나라에 이런 자원봉사자가 조금만 더 있었다면 지난 6월의 「씨랜드 참사」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을까.총과 마약으로 얼룩진 미국도 이를 정화하는 힘은 3,000만 자원봉사자에게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 외국, 특히 미국의 여름캠프에 가보면 나이 성별 직업을 초월해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다. 자원봉사자 모임도 우리나라의 반상회처럼 흔히 볼 수 있다. 공공도서관이나 공공체육시설에는 예외없이 무보수 자원봉사자들이 땀흘리고 있고 이들의 서비스는 종종 감동마저 느끼게 한다.
씨랜드 사건과 같은 대형참사는 관련 업자와 공무원의 비리만 없어진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이윤추구가 본령인 영리사업자에게 엄격한 도덕률을 요구하는 것만으로 제2, 제3의 씨랜드 참사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처럼 법과 규칙이 잘 정비된 나라도 드물다. 그런데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은 시민 각자의 자발적인 참여의식이 낮기 때문이다. 수련회를 반드시 상업적인 시설에서 대가를 치르고 실시하는 이유를 씨랜드사고를 계기로 새삼 알게 됐지만,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학교 등 공공시설도 얼마든지 수련장소로 이용될 수 있다. 어린이를 진정으로 아끼는 자원봉사자들의 참여도 이끌어 낼 수 있다.
시민사회의 성숙은 돈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어른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 요란한 구호보다는 조용한 실천이 소중하다. 공공도서관이나 공원시설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해보자. 공공서비스의 질이 높아지고 이용자의 불편도 해소되며 공공경비지출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일석삼조인 셈이다.
/이병주 공정거래위원회 총괄정책과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