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1번지. 서울 도심의 가장 길목이 좋은 곳에 자리잡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역사가 오랜 종합예술공연장.세종문화회관이 새롭게 태어난다. 78년 개관 이후 서울시 산하 사업소로 있다가 7월 1일 재단법인으로 독립했다. 서울시가 일일이 간섭하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문화예술인들이 자율 운영한다. 서울시 구청장의 대기소로, 공무원들이 감놔라 대추놔라 하던 시절은 끝났다.
지금까지 시민과는 비교적 거리가 먼 곳이었다. 국가경축행사를 치르느라 로비는 늘 굳게 닫혀 있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면 경비원이 막는다. 권위적인 기세에 눌려, 또 공연을 보러 와도 마땅히 쉴 곳 하나 없는, 관객서비스 0점 짜리 공연장이었다.
덩치만 큰 속 빈 강정
세종문화회관은 3,800석의 대강당, 450석의 소강당을 갖추고 9개 예술단체(서울시교향악단·청소년교향악단·합창단·소년소녀합창단·오페라단·뮤지컬단·극단·무용단·국악관현악단)를 거느리고 그러나 덩치만 컸지 속 빈 강정이다. 지난해 이 단체들이 올린 공연은 가장 많은 서울시향이 17건, 오페라단과 극단은 2건 뿐이었다. 무용단과 소년소녀합창단은 딱 나흘 공연했다. 시민의 혈세로 놀고 먹는다는 비난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표가 팔리건말건 홍보에 신경쓰지 않아 유료관객이 30%도 안됐다. 무사안일 관료행정 탓에 동양 최대 공연장이라는 자랑은 공룡의 껍데기처럼 됐다.
새출발하는 세종문화회관은 지금 거듭나기를 위한 마스터플랜을 짜고 우선 「세종센터」로 이름을 바꾸는 것부터 추진하고 「회관」이라는 명칭이 집회장소나 음식점처럼 들려 공연장에 어울리지 않고 일제시대 표현이라는 지적에 따른 것. 자질있는 전문인력 확충도 급선무. 이미 공연예술부장, 경영관리부장 등 핵심을 외부전문가로 영입했다. 14명을 뽑는 이달 직원 공채에는 동시통역사, 박사학위 소지자 등 무려 1,629명이 몰렸다.
시민에게 다가서기
첫 걸음은 일단 시민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 누구나 즐겨찾도록 환경을 개선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침침하고 퀴퀴한 주자창을 환하고 편하게, 로비를 개방하고 편안하게 꾸며 시민이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생각이다. 가장 좋은 자리를 떡 차지한 사무실을 전부 뒤로 빼고 그 자리를 전시실, 아트숍, 시민 휴식공간으로 꾸밀 계획이다. 바깥 매표소도 건물 안으로 옮긴다. 표를 사기 위해 추위에 덜덜 떨며 줄을 서는 일은 올겨울부터 없을 것 같다. 중기 목표는 소강당 뒤편 지상주차장을 없애고 이 터를 예술과 낭만이 숨쉬는 서울의 몽마르트르로 가꾼다는 것이다. 장기 계획은 오페라·발레·콘서트를 할 수 있는 1,300석 규모의 중극장 건립. 지금의 대강당은 너무 커서 클래식콘서트나 오페라를 하기에 부적합하기 때문이다.
르네상스를 향하여
거듭나기는 이러한 하드웨어 개선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침체된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어 공연의 질을 높이는 소프트웨어 개선이 더 중요하다. 이를 위해 10월 전속예술단 기존단원의 실력을 평가하는 오디션을 실시하고, 내년부터 예술단원과 전직원의 연봉제를 실시한다.
현재 18%에 불과한 재정자립도를 높이는 것도 과제. 수준높은 공연을 위해선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을 벌기 위해 공연의 질을 떨어뜨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이종덕 예술총감독은 강조한다. 『공간활용도를 높이고 시민 위락시설 제공, 후원회 활성화, 판촉 확대 등으로 수입을 올릴 계획』이라고 그는 말했다.
세종문화회관의 독립은 국공립공연장 민간위탁의 모델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국립극장은 내년부터 책임경영기관으로 바뀔 예정이고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전국의 문예회관들도 공무원 직영체제에서 벗어나 민간자율에 맡기는 것이 대세다.
세종문화회관의 실험은 성공할 것인가. 문화예술계 공통의 바람은 시민에게 사랑받는 공간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공연 1번지에 걸맞는 세종문회회관의 르네상스를 서울시민들은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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