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근본에서, 우리 시대의 가장 혼돈스런 모습까지. 「내게서 멀어지는 것은 작다」에서, 「강남역 네거리」까지.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이고, 우리가 벗어나고픈 것들이다. 극과 극의 무대가 나란히 펼쳐진다.배우·연출가 이영란(33)이 이번에는 무(無)로 돌아갔다. 그를 포함, 6명의 배우가 무대에 나와 하는 것이라곤 어떤 물질을 갖고 노는 일. 아니, 그들은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지도 모른다. 기억 속으로 가는 회귀의 몸짓이 「내게서 멀어지는 것은 작다」이다.
공연장으로 들어가는 순간, 극은 펼쳐진다. 인공적 물체는 여기서 그림자도 비치지 않는다. 무대, 아니 쭉 펼쳐진 점토의 공간에서 한 여배우가 흙으로 만든 치마를 한 땀 한 땀 꿰맨다. 그것은 어떤 여인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행위.
점토는 옛 기억으로 데려가는 최선의 매체가 된다. 고무굴 놀이, 재봉틀 밑에서 놀던 기억, 소를 몰고 집으로 간 기억, 어머니가 만들던 국수를 몰래 떼먹은 기억…. 연극을 위해 출연 배우들이 연습한 것은 마임 무용 택견 등 신체 훈련과 흙을 가지고 「노는」 것. 흙이라는 단순한 매체를 갖고 과연 어디까지 들어 갈 수 있는가가 연극의 관건이기 때문이다.
대지의 여인을 연기하는 이영란은 『느림 속으로 들어가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92년 동숭아트센터에서 국내 첫 물체극을 공연했다. 27일부터 9월 2일까지 바탕골갤러리. 오후 4시 30분, 7시 30분. 대한제분이 제공한 밀가루와 소면을 나눠준다. (02)762_0010
메탈 심리극 「강남역 네거리」. 메탈이라는 금속성과 심리라는 무기체가 만나 우리 시대의 단면을 보여준다. 강남역 네거리에 사는 사람들. 교수(유아 성도착증), 호스티스(자학증),기타리스트(약물중독, 신장매매), 여고생(절도)은 모두 정신병자로 판정받고, 병원으로 가 석달동안 치료받는다. 그러나 그들을 치료하던 의사까지도 마침내 정신병환자가 돼 버린다.
극중 등장하는 메탈은 새로이 작곡됐다. 이 죽음과 광란의 음악을 학전팀으로부터 1년 꼬박 지도 받은 배우들이 직접 연주, 색다른 감흥을 선사한다. 이승호 나성균 등 중견의 묵직한 연기와 김영한 양승걸 등 젊은 몸짓이 이뤄내는 미친 풍경이 아름답다. 이정선 작, 김지종 연출.
이 극은 학문 연계 작업의 소산이기도 하다. 올초 시인 김시라 등 예술계, 김정일 등 정신의학계 인사 20명이 결성한 학회 「집현전」과의 협의를 거쳐 만든 것. 또 매주 월요일 오후 7시 반 공연 때는 김정일씨가 실제 환자들을 데려와 사이코 드라마를 펼친다. 정신병에 대한 오해를 씻고, 사람들에게 자기 반성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설명이다. 9월 1~30일 강강술래소극장. 화~목 오후 4시30분 7시30분, 토·일 오후 4·7시, 월 쉼. (02)3431_4140
장병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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