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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열며]당신들의 政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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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열며]당신들의 政治

입력
1999.08.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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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김(金)청산론이 또 세간의 화제다. 이 논쟁의 진실성과 허구성은 차치하고, 내가 장년(壯年)이 될 때까지 들어왔던 이 얘기에 우선 기가 질린다. 그들은 한 때 민주화투사로서 어두운 시대의 빛이었으나, 이제는 보스정치와 계파정치의 지도자로 변했다. 침이 마르도록 비판했던 지역할거주의의 피해자였으며 수혜자였다.민주화의 공간에서 이런 폐습을 일소하겠다는 대(對)국민 약속을 수 십번 반복하고 수 십번 어겼다. 그리고, 바로 그 단단한 보호망 속에서 권력을 공유했다. 다시 신당 창당설이 들린다. 내각제 유보 밀담에서 모종의 정치적 흥정이 오갔다는 소문도 들린다. 우리의 보스들은 빚쟁이들이 즐겨 사용하는 각서를 주고받는다.

그 속에 어떤 단서들이 붙는지 국민들은 알 지 못한다. 정당의 잦은 이합집산을 정치발전의 필수요건이라고 변명하겠지만, 우리에겐 정략으로 읽힌다. 1987년 시민항쟁과 함께 전국민이 동참한 민주화프로젝트 12년 동안 우리가 목격한 것은 보스들의 이런 노련한 전술이었다. 진정한 정치가 필요한 민주화시대에 정치는 없었다.

「나는 욕망한다. 고로 존재하는」 이 시대에 정치는 항상 새로운 욕망의 분화구이자 관리자여야 한다. 시민들의 욕망을 억압했던 시대에 정치는 그들의 것이었다. 87년 이후 우리는 정치가 우리 것이 되기를 바랐다. 그 바람은 아직 충족되지 않았다. 정치는 아직도 「우리 것」이 아니라 「당신들의 것」이다.

70년대 초반 사십대 기수론으로 등장하여 그들의 정치를 우리들의 정치로 만들고자 했던 사람들이 민주화의 공간에서 아직 정치를 우리에게 돌려주지 않은 탓이다. 3김청산을 논하기 전에 3김에게 물어야할 마지막 요구가 이것이다. 보스정치에 정년규정을 적용하지 않는 한, 민주화는 지체될 것이다.

돌이켜보면, 민주화가 시작된 지 12년 동안 적어도 국민들은 제도, 관행, 행위규범을 바꾸면서 괜찮은 정치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수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존경받던 사람들이 범법자가 되고, 실권자가 전락하고, 뜻있던 사람이 의지를 꺾었다. 민주화에 불가피한 고통일 것이지만, 성쇄와 영욕의 잦은 반복은 국민들에게 정치혐오증을 안겨줬다.

성역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사정(司正)의 칼날에 정말 믿을 만한 성역은 없어졌으며, 의지할 곳이 없을 때 최후의 보루가 될 신성한 영역이 모조리 파헤쳐졌다. 정작 정치관리자인 정관재(政官財)계가 정치 사정의 주된 표적이었음은 아이러니이다. 이것이 모자라 인류사회의 고뇌를 수 백년 동안 돌봐온 대학, 교회, 사찰도 비리척결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언론은 때로 이쪽 저쪽을 오가며 현실적인 몸짓으로 진동했다.

「민주주의는 지축을 흔드는 지진처럼 다가온다」던 토크빌의 표현대로, 오랜 군부통치에 몸통이 비틀어진 한국사회에서 민주화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제물(祭物)로 바칠 것을 요구한다. 그 제물의 행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현정권은 지난 정권이 미루어둔 민주화 과제를 완결해야 할 시대적 과제를 넘겨받았지만, 침몰한 경제를 수습하느라고 아직 본격적인 개혁정치로 진입하지 못한 상태이다. 올해 하반기 「위기관리 정치」를 마무리하고 「개혁정치」를 가동한다면 또 얼마나 많은 제물과 고통이 생산될 것인가.

8·15경축사에서 김대중대통령은 「서민정부」로 전환하겠다는 대단히 의욕적인 포부를 밝혔다. 위기관리정치의 성공이 서민들의 막대한 희생을 초래했기에 서민정부로의 전환은 어쨌든 환영할 만한 선택이다.

그러나, 역량을 넘어서는 무리수를 남발거나 저항세력으로 화할 수많은 제물을 양산하면 지난 정권의 악몽이 재현될 우려가 많다. 경제위기로 지친 국민들을 개혁정치의 주인이 되게 할 일이다. 그리하여, 「당신들의 정치」를, 정치없는 정략의 시대를 마감하기를 바란다.

/송호근·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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