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어의 마지막 한숨(샐먼 루시디 지음·문학세계사 발행)그런 책이 있다. 점잔 빼고 앉아서 이건 저러네 얘기하지 못하고 메시아 오심을 알리는 세례자 요한처럼, 혹은 서울역에 즐비한 전도사들처럼, 제발 이 책 좀 읽으라고, 광야에 나가 외치고 싶은 책. 물론 그런 책은 흔하지 않다. 흔하다면 그렇게 열이 뻗칠 리가 없지.
독자들이 내 입가의 게거품을 용서해준다면, 감히 말하건대, 샐먼 루시디의 이 책은 완벽하다. 재미있고, 한편 심오하고, 또 한편 감동적이다. 소설이 갖추어야할 모든 것이 있다. 그런데도 이 책은 묻혀 있다. 출간된 지 3년이 지났지만 이렇다 할 주목도 없이 먼지만 뒤집어 쓴 채 대형서점의 창고에서 목하 썩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쯤 되면 광야에 나가 게거품을 물어야 할 충분조건이 성립된다.
샐먼 루시디는 호메이니의 사형선고로 유명해졌으나 살해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의 작가 생명은 사형에 준하는 타격을 받았다. 왜? 그는 「작가」로서가 아니라 「호메이니의 사형선고를 받은 작가」로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나 그를 알지만 또한 누구도 그의 작품을 읽지 않는다. 쿤데라도 말했듯이 루시디는 저널리즘의 요약으로만 읽히는, 불행한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런 사정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 그러나, 또 한 번 게거품을 물고 말하건대, 루시디의 이 책은 마르케스나 주제 사라마구의 역작들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없는, 톱 클래스의 소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책을 소개하는 내 글의 절반 역시, 그가 결코 풍문 속에서만 존재하는, 그런 트러블 메이커는 아니라는 것을 해명하는 데 소비되었다. 이렇게 멋진 소설을 쓰고서도 불행은 계속된다니, 우울하고도 두려운 일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