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 냉전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역할과 위상 정립에 부심하고 있는 미 중앙정보국(CIA)이 최근 국제경제 현안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모의 세계무역기구(WTO) 회의를 개최, 관심을 모았다.파이낸셜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조지 테닛 CIA국장의 자문기구인 국가정보위원회는 8월 초 워싱턴주의 한 안가에서 모의 WTO 회의를 열어 주요 현안 및 예상 쟁점에 대한 내용 분석을 시도하고 대책을 검토했다. 가상 회의에는 CIA요원뿐 아니라 전직 미 상무부 관계자와 학계 인사까지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인 회의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11월 시애틀에서 열리는 실제 WTO회의를 겨냥한 것이란 분석이 유력하다.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대책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그런 회의를 정기적으로 개최한다』는 게 CIA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세계 최대 정보기관이 WTO 회의를 앞두고 미리 가상회의를 개최했다는 것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는 「경제전쟁」시대를 CIA가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비밀스런 「공작」의 시대는 끝나고 정확한 경제 정보의 수집만이 살길이라는 점을 재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현지 언론도 모의 WTO회의를 CIA의 변신작업과 연결시키고 있다.
97년으로 창설 50주년을 맞은 CIA의 변신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93년 우르과이 라운드 협상 막바지에는 CIA가 프랑스 대표단의 협상전략이 담긴 문건을 절취했다는 루머도 나돌았다. 국익을 위해 은밀히 경제전쟁의 첨병으로 나섰다는 방증이다.
유럽과 중국, 일본 등이 모의 WTO회의를 개최하는 등 발빠른 CIA의 행보에 경계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도 이때문이다.
장현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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