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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칼럼] '김현철씨 사면'에 깊은 절망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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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칼럼] '김현철씨 사면'에 깊은 절망감

입력
1999.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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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중반, 나는 가슴 저미는 글 한 줄을 읽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네크라소프의 시에 나오는 이 글은 당시 학생운동을 했던 한 선배가 법원에 제출한 항소이유서에 인용한 것이었다.그때 나는 장차 나이가 들어 세상사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더라도 우리 주위의 불합리하고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슬퍼하고 노여움을 느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뒤 십수년이 지난 최근 너무나 어이없고 터무니없는 일이 일어났다. 아버지 김영삼(金泳三) 전대통령의 권세를 등에 업고 많은 죄를 지은 현철(賢哲)씨가 사면된 것이다.

그의 사면은 시종 문제 투성이였다. 일반 국민중 그를 옹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가 복역생활을 성실히 했다는 말 또한 듣지 못했다. 그가 자신의 죄를 뉘우쳤다는 이야기도 들리지 않는다. 정치권을 제외하면, 그의 사면이 국민 화합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또한 없다. 결국 아무리 들여다봐도 그를 사면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전직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사면됐다.

여기서 정말 궁금한 것이 있다. 국민의 정부라면 할 일이 얼마든 있을텐데, 왜 한 사람의 사면에 그토록 고민하고, 왜 그의 사면을 위해 잔여형기 면제라는 변칙적인 방법까지 동원했는지. 전직 대통령의 반격이 무서워서인지, 정치보복 시비에 휘말릴 것이 두려워서인지 그 이유를 정말 알 수 없다.

나는 현철씨 사면 소식을 접하면서 네크라소프의 시를 다시 한번 떠올렸다. 과거 그의 시를 접했을때 했던 작은 다짐대로라면 당연히 큰 슬픔과 노여움이 밀려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와 반대로, 슬픔이나 노여움이 생기지 않았다. 대신 현철씨 사면에서 다시 한번 확인된, 우리 사회의 무원칙성에서 한없는 절망감을 느꼈다. 우리 젊은이들에게서 슬픔과 노여움마저도 앗아가버린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김용휘·한강상사 생산지원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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