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축사 뒷얘기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는 『취임사 때 보다 힘들었다』는 청와대 김한길정책기획수석의 말처럼 상당한 산고(産苦)를 겪었다. 8·15 일주일전 경축사 초안이 마련된 이후, 무려 4번이나 수정본이 작성됐으며 최종문안은 13일에야 완성될 정도로 공력이 들어갔다.
외형상 5일 준비회의, 13일 독회가 전부이지만, 내부적으로는 김대통령이 지난달부터 온갖 건의를 받고 청남대 휴가 때도 8·15 구상에 정성을 쏟았다.
특히 막판에는 김대통령 스스로가 밤잠을 설쳐가면서까지 문장 하나, 단어 하나까지 손질했다. 재벌개혁과 관련, 10여가지 문구가 제시됐으나 김대통령은 「너무 세다」는 반론에도 불구하고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재벌을 개혁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제일 강한 문구를 택했다.
「새천년의 주체, 젊은이」라는 대목이나 대선자금 언급, 북한의 「통미봉남(通美封南)」정책 비판도 김대통령 자신이 집어넣은 것이다.
청와대와 정부, 당정의 실무 협의도 수십차례나 열렸다. 주로 실현가능성의 검증과 후속조치를 위한 회의였다. 김대통령이 지난해 8·15 경축사 때 제2건국을 천명한 뒤 후속조치 마련을 위한 논쟁으로 허송세월한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에 따라 16일부터 재정경제부를 필두로 후속정책들이 쏟아져 나올 예정이다. 특히 현실성 차원에서 자문교수단이 제시한 「2002년 국민소득 1만3,000~1만4,000달러」 지표가 1만2,000달러로 하향 조정됐다.
각 부처나 자문그룹의 아이디어나 역점 현안이 너무 많은 것도 부담이었다. 이번 경축사는 8,310자, 200자 원고지 55.6장으로 낭독에 25분이 걸렸지만, 건의나 아이디어를 다 살릴 경우 원고지 300~400장에 달할 엄청난 양이었다.
외교안보 및 남북관계는 A4 용지로 3~4장이었으나 1장 이내로 줄어들었고 환경분야는 그 이상으로 축약, 해당 부처들로부터 『너무 한다』 『차별대우 말라』는 등의 「원성」이 터져나왔다.
/이영성기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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