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중앙병원 동관 10층 1206호. 간이식 수술을 마친 뒤 퇴원을 앞둔 백수현(41)씨는 하루에도 몇차례 3층 중환자실을 드나든다. 자신의 간을 나눠 준 14년지기 임준택(43)씨의 회복여부가 걱정돼서다.대구에서 주택 철골공사 하청업체를 운영하는 백씨가 친구이며 동업자인 임씨의 딱한 사정을 접한 것은 5월말. 병색이 완연한 임씨는 사무실 한켠에서 『병원에서 강경화말기 판정을 받고 오는 길』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포기하지 말라」는 말조차 입밖에 나오지 않았다. 간이식수술만이 유일한 희망이었지만 임씨에게는 간을 나눠줄 형제도 없었다. 뇌사자의 간기증에 기댈 수밖에 없었지만 언제 기증자가 나타날지 알 수 없는 일.
백씨는 그날부터 고민에 빠졌다. 85년 서울에서의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철골공사업에 뛰어들면서 쌓아온 임씨와의 사연들이 스쳐갔다. 사업 초창기 서툰 자신을 가르치며 이끌어 주었고 그후 14년간 하루도 안보면 서운할, 형제 이상의 우정을 나눠온 임씨였다.
백씨는 다음날 보건소에서 혈액형과 간염검사를 받았다. 뜻밖에 임씨와 같은 B형. 백씨는 곧바로 친구에게 달려갔다.
『내가 해줄게. 당장 서울 가자』
우리나라 간이식수술의 70%를 담당하는 서울중앙병원측도 백씨의 케이스에 놀라기는 마찬가지. 혈액형만 맞으면 가능한 간기증이지만 후유증 때문에 형제간도 드문일인데 친구가 나선 것은 초유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백씨에겐 다른 일보다 가족들을 설득하기가 힘들었다. 백씨의 부인(41)은 『『동기간에도 드물다는 일을 왜 하려 하느냐』며 울고불고 매달렸다. 그러나 백씨는 완강했다. 『14년 우정에 대해 당신이 뭘 아느냐』
지난달 29일, 두 친구는 나란히 수술대에 누웠다. 막상 수술대에 눕자 죽음의 공포가 엄습해 왔다. 두 친구는 말없이 손을 잡았다. 각각 14, 23시간의 대수술을 받은 뒤 회복실에서 깨어난 임씨가 백씨를 향해 『자네가 괜히 고생했다』라고 말하자 백씨가 맞받았다. 『내가 아프면 안해줄텐가』. 맞잡은 손을 통해 두 사람은 형제보다 더 가까워진 친구를 느낄 수 있었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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