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개혁의 시계가 10년 뒤로 돌아갔다. 국회가 12일 본회의에서 사립학교법과 고등교육법을 법안심사소위 결정대로 통과시켰기 때문이다.이로써 국회는 90년 노태우(盧泰愚) 군사정권이 개악한 사립학교법보다 더 개악된 법을 만드는 1등 공신이 됐다.
나는 최근 우리나라가 IMF 신탁통치에 들어간 것을 부실한 교육 탓이라고 생각한다. 획일적이면서도 창의력을 말살시키는 교육은, 학교 현장을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고 능동적인 참여를 고취하는 공간으로 바꾸기 전에는, 결코 치유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대학의 83%를 차지하는 사립대학의 교육환경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사립대학은 어떤가. 다가오는 지식기반 사회를 앞서서 이끌어 나갈 조건을 갖추고 있는가.
나는 지식의 생산성을 높이는 지름길은 대학사회의 민주화를 통한 대학자치 이외에 다른 길은 없다고 생각한다. 대학에서 교수, 학생, 직원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여 민주적으로 의사결정을 할 때에만, 우리나라 대학도 국제적 수준에 도달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대학 현실은 어떤가. 예를 들자면 이런 수준이다.
교수는 자신이 속한 학과의 예산권조차 가지고 있지 못하다. 학생은 자신의 학업상 요구를 제대로 개진할 수 있는 장치를 갖고 있지 않다. 더 나아가 직원은 자신의 전문성을 쌓으면서 학교 발전에 이바지할 위치를 보장받지못하고 있다. 이런 사립대학의 현실에서 유일하게 관철되고 있는 것은 재단의 독점적 학교운영권이다.
김대중(金大中) 정권 출범 이후 교육부는 이러한 재단의 전횡을 그나마 견제할 수 있는 교육관계법 개정안을 만들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교육부의 개정안이 개혁적인 안이라기보다 개량적인 안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교육 관련 단체가 그간 요구해 왔던 것은 현재 임의기구 상태에 있는 교수협의회를 공식기구화, 심의기구화하자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조건이 다른 외국의 신자유주의를 추종하는 교육부는 절충안으로 교무위원회에 평교수의 참여를 허용하고, 공익이사제도를 도입키로 했다.
그러나 이러한 개량안마저도 국회 교육법안소위가 수정·변질시켜 버린 것이다. 게다가 국회 교육위는 분규학원에 파견되는 관선이사의 임기를 2년에 1회 연임토록 결정, 임기를 제한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교육부의 개정안에는 없었던 조항이다.
이로써 「학교는 주인이 있어야 하고 주인은 설립자가 돼야 한다」는 교육부 장관의 교육철학이 관철되면서 재단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게 됐다.
사립대학을 개인의 소유물, 더 나아가 치부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 한 사학 발전은 요원하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도 예·결산 내역을 공개하고 외부감사를 두며 사외이사제를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육영을 목적으로 하는 공공교육기관이 외부감사제 도입은 커녕 공익이사제도 조차도 도입하지 않도록 하는 법안은 대체 누구를 위한 법인가. 국민을 위한 법인가, 사립학교 재단을 위한 법인가. 법안은 통과됐지만 그것이 가져올 파급효과를 고려할 때, IMF 지배체제를 벗어날 날이 점점 더 멀어져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만의 기우일까.
/박거용 상명대교수·영어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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