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는 「제2의 취임사」로 평가된다. 경축사에 예시된 각 분야의 핵심 과제들에는 김대통령이 남은 임기 3년반 동안 무엇을 국정 방향으로 삼고, 어떻게 추진할지가 잘 드러나 있다.그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개혁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개혁이라는 패러다임을 통해서만 새 천년의 선진한국이 가능하다는 메시지가 경축사의 한가운데를 관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특히 20세기의 마지막 광복절이라는 시점을 중시, 개혁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했다. 「희망과 번영의 새 천년을 열어나가자」는 경축사의 부제처럼, 앞으로 몇년이 한국의 미래를 좌우하며 그 성패는 개혁의 성공 여부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조선왕조 말기의 위정자들이 세계사적 흐름을 읽지 못해 우리 민족이 고난을 겪은 100년전의 역사를 현 시점에 대입, 개혁의 당위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특히 경축사에 나오는 『개혁정부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분명히 할 것』이라는 대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개혁을 반드시 실천하고, 또 실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힘의 논리도 내포하고 있다.
개혁 신당을 출범시키겠다든지, 반부패특위를 만들겠다든지, 재벌해체를 의미하는 재벌개혁을 하겠다는 것 등은 정쟁의 와중에서 고개를 드는 반개혁 기류, 느슨해지는 분위기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재벌개혁 및 부패척결과 맞물려 경제정의 실현, 서민·중산층 지원 등은 국가 경제를 이끄는 동력을 과거와 다르게 설정하겠다는 구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김대통령이 야당 총재 시절부터 「중소기업과 중산층이 이끄는 경제」를 강조했던 점을 감안하면, 경제의 중심축을 재벌로부터 빼내는 실질적인 작업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실제 경축사에서 제시된 금융소득종합과세 재실시, 변칙 상속·증여를 통한 부(富)의 부당한 대물림 방지, 봉급생활자의 세부담 경감 등 구체적 정책들이 그 구상을 입증해주고 있다.
이러한 개혁구상은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둔 측면도 있다. 『1년반만에 IMF를 극복하겠다』고 했던 대선 공약처럼, 경축사에 2002년 국민소득 12,000달러 달성, 완전고용 실시 등의 거시경제 지표가 예시된 사실에서 총선 전략적 성격이 엿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들이 『경축사에 나오는 개혁구상은 결국 신당으로 용해될 것』이라고 말하는데서도 신당을 통한 총선승리가 중요한 포인트임이 드러난다.
/이영성기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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