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정번복을 일삼는 심판 밑에서 경기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까. 대우사태로 혼란스런 금융시장. 시장심판관인 정부가 스스로 게임의 룰을 뒤바꿔 판정의 예측가능성을 떨어뜨리다보니 시장참여자(투자자)들은 더 우왕좌왕하고 결국 시장은 극도의 무질서로 빠져들고 있다.13일부터 시행된 수익증권 환매대책(대우채권 환매연기)은 결과적으로 투자자들에게 「정부의 말은 믿지 않을 수록 좋다」는 「새로운 투자전략」을 일깨워줬다.
지난달말 「시장안정을 위해 수익증권 환매를 자제해달라」는 정부의 호소에 못이겨, 불안하지만 환매요구를 포기했던 투자자들은 이제 손실을 감수하며 돈을 찾거나, 아니면 적어도 6개월 이상 돈이 묶이는 희생적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반대로 정부의 요구를 못들은 척, 그동안 약삭 빠르게 수익증권을 되팔아 돈을 찾은 투자자들은 지금쯤 「정부 얘기를 안듣기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을 것이다.
당국방침에 순응한 대가가 손해이고, 묵살한 결과가 이득으로 돌아오는 상황이라면 투자자들은 앞으로 확실히 반대로만 행동하면 될 것 같지만 심술궂게도 정부는 때론 이조차 용납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대우사태 발생직후 「대우여신 회수자제」 메시지를 외면한 채, 연초부터 대출금을 줄여온 금융기관들에 「회수금액을 모두 내놓아라」고 지시한 바 있다. 거역에 대한 일종의 응징이라 할 수 있다.
정부 말을 따를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캄캄한 상황이다. 정부의 시장다루기 능력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럭비공처럼 튀는 것은 시장도 투자자도 아닌 당국이었다.
/이성철 경제부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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