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부터 시행된 가정폭력방지법이 검찰 경찰 법원등 관련기관의 몰이해와 무성의로 당초 기대만큼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5일 새벽 서울 은평구 수색동 모식당에서 바람을 피운다는 이유로 남편 P(40)씨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진 Y(34)씨. 남편에게 심한 구타를 당해 온 Y씨는 지난달 24일 서울 서부경찰서에 P씨를 폭행혐의로 고소했으나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P씨는 불구속 입건으로 하룻만에 풀려났다. 결국 국가기관에 도움을 요청한 Y씨는 아무런 보호조치를 받지 못한 채 12일만에 세상을 떴다. 또 4월30일 남편의 폭력에 못이겨 경찰에 신고한 김모씨는 담당형사로부터 『신고해봐야 벌금만 물게 될 것』이라는 「충고」를 듣고 없던 일로 해버렸다.
서울여성의 전화 이문자(李文子)회장은 『대부분 가정폭력범죄는 단순한 부부관계 문제로 취급돼 기소유예되거나 기껏해야 벌금형이』라며 『가해 남편의 경우 무직자가 많아 벌금형을 받으면 결과적으로 피해여성이 물어야 하는 어이없는 상황도 벌어진다』고 말했다.
신고를 하더라도 상처나 진단서가 없으면 훈방조치 되거나 남편 말만 일방적으로 듣고 돌아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서울 동작구 흑석동의 한 주부는 『지난 5~6월 남편을 3차례나 경찰에 신고했으나 쌍방이 구타했다는 남편 말만 듣고는 부부간에 알아서 처리하라며 돌아가버렸다』고 말했다.
서울 북부지청의 한 검사는 『과중한 업무량 때문에 일일이 피해자를 불러 조사하지 못하고 경찰조서를 토대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아, 가정법원으로의 가정보호사건 송치율은 20~30%에 불과할 것』이라며 『검찰내부에서도 대책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가정법원으로 사건이 송치되더라도 예산부족으로 인해 가해 남편을 개선할 프로그램 자체가 전무한 실정이다. 상담위탁, 치료위탁의 보호처분의 경우, 서울시내 지정 상담소는 2곳 뿐이고 치료기관은 아예 없다. 가정법원에 따르면 지난 3~4월 가정폭력사건과 관련해 접수된 보호처분 151건 중 99건이 불처분 판정을 받았다.
대통령직속 여성특별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가정폭력방지법 시행과정에서 여러가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면서 『9월께 관계기관이 개선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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