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집단 이기주의로 몸살을 앓고 있다.12일 축협 신구범(愼久範)회장의 할복소동은 이익단체의 갈등이 극단적으로 표출된 대표적사례. 국회와 여야 당사앞에선 하루에도 몇차례씩 각종 노조등 이익단체의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국회의원들은 이들의 눈치를 보기에 급급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각종 개혁법안이 크게 훼손된 채 통과되거나 아예 처리를 미루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12일 한국 장애인단체 총연맹 회원 2,000여명은 여의도 국민회의 당사앞으로 몰려와 유리창을 깨며 항의시위를 벌였다. 김대통령이 지목한 12대 개혁법안중 하나인 「장애인 직업재활법」을 빨리 통과시키라는 것이 이들의 요구사항.
이들은 이어 국회앞 도로를 한동안 점거한 뒤 대표자 20여명이 법안 제출자인 이성재(李聖宰)의원의 사무실로 몰려가 오후 내내 농성을 벌였다.
이 법안은 장애인 복지와 고용문제를 복지부에서 총괄하고 2,000억원 규모의 기금을 가진 장애인고용촉진공단을 노동부에서 복지부로 이관하는 것이 골자.
이의원이 지난해 12월 법안을 제출하자 이를 반대하는 노동부측의 입김으로 국회 환경노동위에선 공단의 복지부 이관 조항을 삭제한 「장애인고용촉진법 개정안」을 제출, 9개월째 단일안을 만들지 못한채 팽팽히 대립하고 있다.
반면 노동부측을 지지하는 한국지체장애인협회측도 의원들을 찾아가 『직업재활법에 찬성하면 총선때 표를 절대 안찍겠다』며 압력을 넣고 있다.
또 농민들의 도매법인을 거치지 않고 농산물 직거래를 가능하도록 규정한 「농수산물 유통및 가격안정법」도 도매법인과 중도매인들의 마찰로 표류중이다. 이번 임시국회에선 방송사들의 로비가 극심했던 「통합방송법안」은 상임위 통과가 좌절됐고, 교육개혁의 상징인 3대교육법안은 핵심조항이 모두 거세된 채 본회의를 통과했다.
또 경영민주화와 소비자 보호를 위한 핵심장치인 증권관련 집단소송에 관한 법률과 제조물책임법도 업계의 강력한 저항을 이기지 못하고 정기국회로 미뤄졌다.
국회 관계자는 『이익집단들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법안에 반영시키려 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고 이를 조정하는 것이 정치』라면서도 『그러나 최근의 집단 이기주의와 실력행사는 위험수위에 다다른 느낌』이라고 우려했다.
/이태희기자 taehee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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