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킹스턴에 거주하는 교포로부터 최근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 편지는 이렇게 시작된다. 『…71년 경기도내 고교의 교사였던 나는 한 학생으로부터 4·19혁명과 5·16혁명의 차이점을 묻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교직자이자 신앙인으로서 나는 양심에 따라 「4·19는 자유당 장기독재에 반발한 민중봉기에 의한 혁명이고, 5·16은 군인들에 의한 군사반란일뿐 혁명은 아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일을 계기로 저는 고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이민생활이 벌써 27년째 계속되고 있습니다…』■편지를 보낸 한씨는 자신이 올해 65세라고 했다. 「답변」후 그는 정보부 요원 등에게 끌려가 강제로 사직서를 쓰고 해고됐다. 친구의 주선으로 주일 캐나다대사관에 억울함을 호소한 결과 72년 이민허가를 얻어 오늘에 이르렀다. 그의 설명으로 보아 인권을 중시하는 캐나다정부가 딱한 사정을 듣고 그에게 이민을 허가하지 않았나 여겨진다. 출국후에도 고교 교감이던 작은형이 해직되는 등 가족들의 수난은 계속됐다고 한다.
■한씨가 편지를 보내게 된 동기는 본란 「박정희의 부활」(6월25일자)을 읽고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의견을 보낸 것이다. 그는 편지에서 박정희기념관은 동 시대에 죄없이 죽어간 많은 영령의 추모관을 먼저 건립한 후에나 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편지는 또 『김대중대통령의 박정희용서발언은 어디까지나 피해자중 한사람의 개인적인 일에 국한돼야 하며 그것이 마치 박정희의 역사적 사면을 의미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끝맺고 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엔 박정희독재가 남긴 상흔이 너무 크고 깊다. 거듭 지적하지만 박정희의 역사적 평가는 이르다. 정부가 기념관 건립에 나설 일이 아니라 그가 저지른 인권유린사건의 진상규명에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장준하씨·최종길교수 등 의문사와 각종 법살(法殺)의혹을 푸는 일이 그 시작일 수 있다.
/노진환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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