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밀레니엄의 문턱에서, 한국과 일본의 영화가 처음으로 한 자리에서 만난다. 9월 3일부터 8일까지 충남 아산에서 열리는 제1회 한·일청소년영화제(KOPAN YF 99)다. 21세기 아시아 문화와 화해의 주역이 될 양국의 청소년들이 편견없는 시선으로 영화를 통해 만나는 축제의 마당이다.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와 본격적인 양국간 대중문화의 개방에 즈음해 문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민간차원의 교류를 하는 출발선이다.영화제의 내용
한·일 청소년 영화제의 주무대는 충남 아산시 온양 신정호수 국민관광지 일대. 신정호수 잔디마당에 설치되는 3,000석 규모의 야외 주 상영관을 중심으로 올림픽 국민생활관 극장, 아산시청 대극장 등 4개 상영관에서 하루 5회씩 총 98편을 상영한다. 2일 오후 8시에는 SBS FM 공개방송 형식으로 인기가수들이 축하무대를 펼치는 전야제가 열린다.
부분 경쟁방식을 도입한 영화제는 모두 6개 부문으로 나눠진다. 일본을 대표하는 감독들의 장편 극영화 및 재일교포 감독들의 작품으로 현대 일본의 모습을 조명하는 「프리즘 오브 재팬」, 동아시아 각국의 우수 영화들을 소개하는 「포커스 온 아시아」, 한·일 양국의 대표적 애니메이션을 상영하는 「코팬 스페셜」 이 있다. 이밖에 「영 포커스」는 한·일 양국의 중고등학생 및 대학생 등 예비영화인들이 만든 단편영화 41편 중 우수작을 선정해 대상, 심사위원특별상 등 6개 부문을 시상한다. 사전 기획서 및 시나리오 심사를 거쳐 제작비를 일부 지원하는 「코팬 프로모션 플랜」 도 마련했다.
선보이는 일본 명작들
일본 장편은 5편. 하나같이 이번이 아니면 보기 힘든 명작들이다. 「키쿠와 이사무」는 원로감독 이마이 타다시(今井正)의 59년 작품으로 일본영화 베스트10 중의 하나로 꼽힌다. 할머니와 사는 남매의 이별과 상처를 통해 2차대전 패전후의 혼혈아 문제를 짚었다. 「키쿠와 이사무」가 과거라면 이소무라 이츠미치(磯村一路)감독의 「파이팅 에츠고」(98년)는 현대 최고의 청춘영화라 할 수 있다. 가수 이상은이 주제가 「어기여 디여라」를 불러 화제가 됐던 요코하마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이다. 「하나_비」로 우리에게 소개된 키타노 타케시(北野武) 감독의 91년 작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와 92년 400만 관객동원으로 괴담시리즈의 원조가 된 히라야마 히데유키(平山秀幸) 감독의 「학교괴담」, 동명만화를 원작으로 한 시노다 마사히로(條田正浩)의 「소년시대」가 선을 보인다.
「일본인도 한국인도 아닌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재일교포 감독들의 주옥같은 영화 3편도 소개된다. 김우선의 「윤의 거리」(89년)는 젊은 사랑을 통해 재일교포의 애환을, 김수길의 「어스」(91년)는 청소원을 통해 환경문제를 다뤘다. 김덕철의 위안부 문제를 다룬 「건너야 할 강」은 마이니치영화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 수상작.
현대 일본사회를 독특한 시각과 비판적으로 접근한 테라다 야노리(寺田靖範) 감독의 「아내는 필리핀인」과 고바야시 시게루(小林茂) 감독의 「방과후」와 「자전거」도 놓치기 아까운 일본 다큐멘터리. 인도네시아의 「천사들에게 보내는 편지」와 베트남의 「냠」, 몽골의 「불길한 운명」과 우즈베키스탄의 「난 희망한다」도 힘들게 찾아낸 아시아 명작들. 「반딧불의 묘」로 유명한 다카하시 이사오(高畑勳) 감독의 「첼로리스트 고슈」 등 일본 애니메이션 6편과 한국 김청기 감독의 「태권 브이」3편도 상영된다.
한국영화는
「수학여행」(감독 유현목) 「저 하늘에도 슬픔이」(김수용) 「제7교실」(이형표) 등을 오랜만에 다시 만날 수 있다. 칸 영화제 단편부문 심사위원상을 받은 송일곤의 「소풍」, 임필성의 「소년기」, 민규동의 「허스토리」, 이성강의 「덤불속의 재」 등 한국 우수단편과 애니메이션 40여편도 「코리아 영 오피니언」에 모았다.
방한하는 일본 감독
「파이팅 에츠코」의 이소무라 이츠미치, 「감각의 제국」을 감독한 오시마 나기사 등과 함께 「쇼치쿠(松竹) 누벨바그」를 이끌며 전위적인 작품을 발표해 온 시노다 마사히로, 「학교괴담」의 히라야마 히데유키 감독이 처음 한국을 찾는다. 재일동포 감독 김덕철, 김우선 감독도 온다. 「천사에게 보내는 편지」를 출품한 인도네시아의 가린 누구토흐 감독, 몽골 영화 「불길한 운명」의 여주인공이자 몽골의 대표 여배우인 체체구도 방한한다.
다양한 행사
9월 4, 5일 아산 시청 앞 가설무대에는 「코팬 초이스 아티스트」로 선정된 가수 이상은이 무대에 선다. 「담다디」때와는 달리 동양의 선(禪)에 기초한 내면의 소리를 담아내는 그녀의 신비로운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 청소년들의 대표적 문화인 힙합의 축제인 「힙합! 페스티벌」도 열린다.
양국 영상학회가 공동주관하는 「한일 청소년 영화의 현황과 전망」 등 세미나도 있다. 영화상영 후 감독, 배우와 관객의 대화의 장도 마련하고 우리 배우들의 사인회도 있다. 5, 6일에는 일본인 참가자들을 위한 전통혼례 재연과 「우리떡 시식코너」가 열린다.
영화제 가는 길
영화제 기간 동안 서울에서 매일 다섯 차례 셔틀버스가 아산까지 왕복한다. 다양한 관람을 위해 1회 관람티킷(3,000원) 외에 심야상영 티킷(5,000원)과 원데이 티킷(1만원)도 발행한다. 티켓 예매 및 문의는 티켓 파크(02_538_3200). 영화제 문의는 영화제 조직위원회 (02_543_0403), 한국일보 문화부(02_724_2428, 2429). 인터넷 (www.kopan.co.kr)으로도 자세한 정보를 볼 수 있다.
/이대현기자 leedh@hk.co.kr 박은주기자 jupe@hk.co.kr
-청소년 영화제 집행위원장 박철수/"맛깔스런 단품요리처럼..."
한·일 청소년 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은 박철수(51) 감독에게 일본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96년 그의 작품 「301·302」 일본 개봉을 계기로 일본과 첫 인연을 맺으면서 제 집 드나들 듯 일본 영화시장과 감독들을 「염탐」하러 다녔다. 『세계시장 진출을 위한 중간단계로서 우리의 6배나 되는 일본 영화시장에 대한 이해와 공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 그리고 누구보다 앞서 실천에 나섰다.
지난해 일본에서 일본배우와 일본어로 만든 유미리 원작의 「가족 시네마」는 애초부터 일본시장(10월 도쿄에서 개봉)을 겨냥했다. 그래서 한국에서의 흥행부진에 실망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8개월 남짓, 박감독은 다시 「일본」이라는 화두를 붙들고 씨름 중이다. 4월 대전에서 문을 연 「박철수 영화 아카데미」 등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집행위원장직을 선뜻 수락한 것은 일본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는 평소의 생각과 영화제의 취지가 딱 맞았기 때문이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이웃이면서, 동시에 경제·문화적으로도 세계적 강대국인 일본을 단지 민족감정으로만 배척하는 태도는 곤란하다고 봅니다. 이번 영화제는, 말하자면 양국 영화인들이 과거나 현재보다는 미래에 대한 보다 긍정적인 전망을 공유하고, 또 합일점을 모색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한번씩 교대로 영화제를 열자는 제의가 들어올 만큼 일본쪽 영화계 인사들의 태도도 적극적이어서 다행스럽다. 자기 일정을 취소하면까지 영화제 참가 의사를 밝혀온 감독도 있을 정도. 『처음부터 무리하기보다는 맛깔스런 단품 요리처럼 내실있는 영화제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40여 편이 넘는 일본 장·단편 영화 중 그저 구색맞추기로 끼워넣은 작품은 단 한 편도 없다는 것 만큼은 자신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영화제에 대한 욕심을 굳이 숨기려 들지 않는다. 『시작은 소박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할리우드 중심의 세계 영화질서에 맞서는 동북아 고유의 대안 영화제로 키워갈 생각입니다』 천생이 게으르다는 그가 팔 걷어 붙이고 나선 숨은 이유다.
/황동일기자 do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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