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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범회장 자해] 문구용 칼로 배 40cm 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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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범회장 자해] 문구용 칼로 배 40cm 그어

입력
1999.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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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범(愼久範)축협 중앙회장이 할복한 12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주변은 격분한 1,000여명의 축협 간부·조합원과 이와 대치한 경찰 병력 등으로 밤새 긴장상태가 계속됐다.핏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국회 농해수산위 회의실에서는 축협 관계자들과 이들에게 사실상 감금된 국회의원들간에 실랑이가 이어졌다.

할복순간 12일 오후 9시10분께 국회 농해수산위는 종일 실랑이를 벌인 끝에 농축협통합법안을 여야 합의하에 통과시켰다.

김영진(金泳鎭)위원장(국민회의)은 『이의없습니까』라는 말과 함께 의사봉을 두드렸다. 다음 안건인 농수산지원특별법을 심의하려던 찰나, 김성훈(金成勳)농림부장관 뒷자리에 앉아있던 신구범축협회장은 비장한 표정으로 일어나 의원석 중앙통로로 2㎙쯤 걸어나와 자민련 김의재(金義在) 김허남(金許男)의원석을 향해 한차례 꾸벅 절을 했다.

신회장은 농축협 통합을 주도해온 김성훈(金成勳)농림장관에게『그동안 고마웠다』고 인사하기도 했다. 신회장 이어 자신의 감색상의 윗호주머니에서 10㎝ 길이의 플라스틱 케이스에 들어있는 사무용 칼(커터)을 꺼내 상의를 열어재친뒤 자신의 배를 그었다. 이때까지도 전혀 낌새를 채지 못한채 신회장의 돌출행동을 의아스럽게 지켜보고 있던 50여명의 여야의원 정부관계자 보도진들은 『어! 어!』라는 소리만 지른채 신회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신회장이 배에 칼을 긋자 곧바로 국회 경위 4명이 신회장에게 달려들어 두팔을 잡고 제지했다. 그러나 신회장은 경위들의 손을 뿌리치며 저항, 회의장 바닥에 눕혀지고서도 두어차례 더 배에 칼을 댔다. 회의장안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회의장 바닥에는 신회장이 쓰러진 자리부터 입구까지 10㎝의 핏자국이 점점이 박혀 카펫트를 물들였다.

농해수산위 회의실 신회장이 피를 뿌리며 병원으로 실려가자 회의장 밖 복도에 있던 50여명의 축협관계자들은 삽시간에 이성을 잃는 듯 했다. 격분한 축협 관계자 수십명이 회의장 4군데 문을 밀치고 회의장을 점거하려하자 국회 관계자들이 책상과 의자로 출입구를 막았다.

이 바람에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김성훈 농림부장관과 이길재(李吉載) 김진배(金珍培) 배종무(裵鍾茂) 송훈석(宋勳錫) 윤철상(尹鐵相·이상국민회의)의원, 김허남(金許男) 김의재(金義在·이상 자민련)의원 등 여야의원 8명, 국회및 정부관계자, 보도진등 30여명이 회의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밤12시께 까지 갇혀있었다.

회의장 밖의 흥분한 축협관계자들은 『사람이 죽었다』『나쁜 놈들』이라는 고함과 함께 문을 두드렸다. 의원들은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면서 비서관등을 통해 박실(朴實)국회사무총장, 김영진 위원장, 국민회의 자민련 총무단등에게 휴대전화로 구조를 재촉했다.

병실주변 신회장은 국회와 축협직원들에 의해 곧바로 인근 여의도 성모병원으로 후송돼 긴급수술을 받았다.

박규남 응급실장은『상처가 하복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30㎝가량 절개됐다』면서 『일부 내장이 밖으로 나와 오염됐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박실장은 『신회장은 시종 의식이 또렷했으며, 병원도착직후 가족을 찾았다』고 덧붙였다.

병원에 몰려온 축협 직원들은 삼삼오오 몰려서 웅성거리는 모습이었다.

신회장은 12일 오전내내 법률심의 8인소위원회 위원들을 만나 축협통합을 막으려는 마지막 설득을 시도했다. 한 축협직원은 『신회장이 회의가 끝나고 나오면서 기다리고 있던 축협직원들에게 「내가 열심히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등 비장한 분위기를 풍겼다』고 전했다.

국회사무처의 한 직원은 『신회장이 할복하기 2시간여전에 상임위 전문위원실에 혼자들어가 뭔가를 작성했다』면서 『당시는 축협통합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작성하는 줄 알았는 데, 혹시 유서가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축협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한때 신회장이 오래전부터 이러한 상황에 대비해 할복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얘기도 떠돌았다. 한 축협관계자는 『신회장이 법안통과 소식을 듣고 회의가 시작되기전 집에 전화를 걸어 「여보 사랑해」라고 말하는 등 이상한 행동을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축협움직임 축협은 충격과 분노에 휩싸인 모습이었다.

축협측은 지역조합장들을 중심으로 긴급 대책회의를 갖고 농·축협 통합이 백지화될 때까지 투쟁을 계속키로 결정했다. 축협은 13일 오전까지 조합원 2만여명을 병원과 국회 주변으로 불러 통합안 반대와 신회장 할복에 대한 책임을 추궁키로 했다.

이에앞서 축협측은 수도권 축협 조합장과 조합원들을 여의도 성모병원에 집결토록 지시, 이날 자정께부터 조합장과 직원등 1,000여명이 여의도 성모병원으로 몰려들어 통합 반대를 위한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축협 비상대책위 관계자 20여명은 농해수산위 회의실앞에서 농성을 벌이다 국회경위 50여명에 의해 강제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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