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수십년동안 「남침위협」을 숙명처럼 안고 살았다. 북한이 입버릇처럼 무력통일을 부르짖은 탓도 있지만, 남침위협은 권위주의 정권들이 정통성을 확보하는데 필요악 이었다. 그러나 90년대들어 공산권이 붕괴되자 갑자기 모든 것이 달라졌다. 『북한이 무너져 갑자기 통일이 되면 큰일난다』는 논리를 보수진영이 먼저 들고 나와 호들갑을 떨었다. 북한타도 대신 북한살리기가 과제가 되면서 남침위협론은 저절로 퇴색했다.■그러나 미국이 느닷없이 북한 핵문제를 들고 나오면서 상황은 다시 급변했다. 미국이 북폭까지 거론하면서 북한과 밀고 당기는 동안 우리 사회는 강경론과 유화론사이를 갈팡질팡 오갔다. 이때 『북한의 핵개발을 막으려면 그들의 심각한 안보불안을 덜어줘야 한다』는 외국학자들이 있었다. 군사적 열세에 처한 북한이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주한미군 핵무기를 철수하고, 2차대전 이후 최대규모의 상륙공격훈련인 팀스피리트 훈련을 중단하라는 논리였다.
■두가지 양보조치는 북한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것이고, 당연히 보수세력은 『호시탐탐 남침을 노리는 북한이 무슨 안보불안이냐』라며 귀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미국은 이를 수용, 강경론자들을 무색케 하면서 핵문제 해결에 실마리를 찾았다. 이후 미국은 고비마다 금창리 핵시설의혹과 미사일위협 등 새로운 이슈를 꺼냈다가 종국에는 싱겁게 의혹해소를 선언하고 있고, 그때마다 우리의 대북 인식도 춤을 추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남의 장단에 쳇바퀴만 돌리지 않으려면, 냉전적 대응에서 벗어나야 한다. 북한 미사일도 핵문제와 같은 맥락에서 볼 필요가 있다. 서해교전에서 보듯이 기울어진 힘의 균형을 어떻게든 되돌리려는 북한의 몸부림에 맞서 우리도 신형미사일을 사들이는 대응방식은 소모적 군비경쟁만 부를 뿐이다. 하는 짓마다 황당해 보여도, 그 처지를 헤아려야 한다. 대량살상무기 시대의 우리 안보에 북한은 싫어도 싸움없이 살아야 하는, 「운명적 동반자」다.
/강병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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