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민중미술의 저항성을 차분하게 제 몸 안에서 육화(肉化)하고 싶었습니다. 투옥, 고문 등의 아픈 상처를 이번 굿판(전시회)을 통해 날려 보내려합니다』80년대 민중미술계의 대표적 저항작가 홍성담. 걸개그림 「민족해방운동사」 사건으로 구속(89~92년)돼 온갖 고문을 받아야 했던 「오월의 화가」.
그가 출소 7년 만에, 여전히 자신을 옥죄고 있는 과거의 그림자로부터 탈출을 시도한다. 「1999 탈옥, 홍성담」전. 12~29일. 그는 탈출구로 국내 대표적 상업화랑인 가나아트센터를 선택했다. 아니,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선택됐다」.
『수많은 국내외 전시회에 참가했지만 개인전은 80년 광주 이후 두번째 입니다. 사실 2년 전에도 개인전을 하려고 화랑측과 계약까지 마쳤는데 제 그림을 보더니 갑자기 화랑 측이 전시계획을 철회했어요. 오랜 방황 끝에 몇달전 가나아트의 문을 두드리게 됐지요』 세월의 힘은 상업화랑이 외면하던 저항작가까지도 제도권 미술계 안으로 진입케 했다. 이번 전시회는 홍씨의 제도권 미술로의 공식 데뷔전인 셈이다.
전시작은 출소 후 그가 작업했던 작품들. 식구통(食口通) 밥 시리즈, 물고문 및 명상 시리즈, 기타 작품 등 3개 부분으로 나누어 140여 점을 전시한다. 자신이 80~90년대 걸어온 길을 작품을 통해 펼쳐 보일 계획이다.
『「식구통」 연작은 제 옥중체험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33X33㎝ 정사각형 캔버스 패널에 흙 등의 재료로 그린 작품 80개를 연결, 전시합니다. 식구통은 강아지 한마리가 겨우 끼어 나올만한 조그만 구멍의 배식구죠. 이 구멍을 통해 밥도 들어오고 편지도 받고 양말이나 속옷도 전해집니다. 옆 감방 동료와 이야기 나누는 통로이기도 하죠. 저는 세계를 하나로 통일하려 했던 파시즘의 상징으로서 식구통을 해석했습니다. 20세기를 극복하려면 이 한뼘 곱하기 한뼘 크기의 식구통에서 해방돼야겠다고 생각했죠』 식구통 속의 하얀 밥그릇과 처절한 눈빛, 감옥, 고문, 억압의 의미를 작가는 80년대 자신이 즐겨 썼던 강렬한 색 대신 부드러운 흙색으로 한단계 승화하고 있다.
사실 그에게 식구통보다 더 검은 기억은 물고문이다. 『저에게 물은 억압의 도구로 비쳐집니다. 물고문의 기억 때문이죠. 물을 다시 본디 모습, 생명의 원천으로 바라보려면 물에서 해방돼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는 물에서 아무리 억압당해도 변치 않는 인간상, 「내가 물고기가 되고 물고기가 내가 되는」 범생명적 세계관까지도 담았다.
전남 신안군 하의도 출신으로 광주에서 줄곧 살다 『거리를 두고 광주를 보고 싶어』 2년전 서울로 「탈출」했다. 『대통령과 같은 고향 출신이라고 덕본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한 민중작가의 내면세계 변화까지도 엿볼 수 있는 전시회다.
/ 송영주기자 yj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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