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일본] 오부치식 전후정치 총결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일본] 오부치식 전후정치 총결산

입력
1999.08.11 00:00
0 0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가 웃음속에 숨겨 온 칼날이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경제재생 내각」을 표방,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을 펴는 한편 보수세력의 오랜 숙원을 착착 풀어 가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같은 보수·우경화가 지극히 조용하고도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오부치식 전후정치 총결산」이 눈길을 끌고 있다.오부치정권의 이같은 모습은 1월19일 개회, 57일이나 연장된 끝에 13일 폐회하는 올 정기국회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히노마루(日ノ丸·일장기)」와 「기미가요(君ガ代)」에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국기·국가법이 9일 성립된 데 이어 10일에는 「도청법」으로 불리어 온 조직범죄 대책 3법이 강행통과됐다. 여론의 반대, 특히 기미가요에 대한 절반 이상의 반대를 무릅쓰고 단 12일간의 실질심의만을 거친 국기·국가법의 통과는 교육현장에서의 게양·제창 강요 우려를 낳고 있다. 한편으로 이른바 「도청법」은 곧 통과될 개정 주민기본대장법(주민등록법)과 함께 심각한 사생활 침해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뿐이 아니다. 5월에 성립된 미일방위지침(가이드라인) 관련법은 일본 주변유사시 자위대가 미군의 후방지원을 맡아 사실상 사태에 개입할 수 있도록 했다. 7월말 성립된 개정 국회법은 내년 정기국회부터 중·참의원에 헌법조사회를 설치, 헌법 문제를 본격 논의하도록 했다.

이러한 법제는 한결같이 일본 보수세력의 해묵은 숙원이었던 동시에 공개적인 논의 자체가 금기로 여겨져 왔다. 저명한 작가인 이노우에(井上) 히사시씨는 국기·국가법 통과에 대해 『일본의 「전후(戰後)」가 끝나고 「전전(戰前)」으로 되돌아 갔다』고 침통하게 논평했다.

더욱이 국회 헌법조사회가 구성되기도 전에 벌써부터 현행 「평화헌법」의 기둥인 제9조의 「무력·전쟁 포기」를 수정하자는 주장이 무성하다. 헌법조사회에 개헌안 발의권은 없지만 현재 상정된 5년의 활동기간 종료후의 개헌 주장의 방향성을 짐작하게 한다. 또 총리·각료의 야스쿠니(靖國)신사 공식참배 방안이 검토되고 있고 일본 유사시에 대비한 이른바 「유사법제」 정비론도 활발하다.

애초에 「전후 정치 총결산」을 들고 나온 것은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총리이다. 전후 미군정이 기본틀을 짠 일본의 모습을 청산하고 새로운 일본을 만들겠다는 이 국가개조 선언은 전후 처음이자 마지막인 그의 야스쿠니신사 공식참배가 상징하듯 보수·우경화 선언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이래 최강의 총리라던 그도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한국·중국 등 주변국의 시선이 차가웠지만 그보다도 일본 국민이 이를 허용하지 않은 때문이다. 진보세력은 물론 중도세력까지도 보수세력과 분명한 선을 긋고 국민의 우려를 자극했다.

그러나 보수·우경화를 앞장서 견제해 온 사회당(현 사민당)이 자민당과 연립정권을 이룬 이후 독자색을 잃으며 「방파제」가 무너졌다. 연정 참여를 눈앞에 둔 공명당의 「중도」는 물론, 민주당의 「개혁」도 자민·자유당의 「보수」와의 경계가 흐려졌다. 냉전 종식 이후의 세계적 보수화 바람을 탄 일본 정치 총보수화의 물결과 장기 불황으로 날로 깊어지는 국민의 정치 무관심이 배경이다.

오부치총리는 그동안 특유의 허허실실로 국민과 야당의 경계심을 풀어 왔으나 국회에서의 숫적 우위를 배경으로 강경돌파 자세까지 보이고 있다. 자유당과 공명당의 이견으로 난항하고 있는 보수대연정 협상이 성공, 자·자·공 연립정권이 출범할 경우 이같은 태도는 한결 굳어질 전망이다.

·도쿄=황영식특파원

yshw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