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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마음] 자리소동 '지하철 살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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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마음] 자리소동 '지하철 살풍경'

입력
1999.08.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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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돌이 조금 못 된 아이가 무릎 위에서 자고 있다. 오랜만에 마음을 먹고 나온 친구 집은 지하철을 타도 멀기만 하고 아이는 이제 지쳐 잠이 들었다. 한산하던 전동차 안은 어느 새 빈자리를 채우고 여남은 명이 서 있다. 지하철 풍경은 버스만 타고 다니던 내게는 꽤 낯이 설다.멀뚱멀뚱 마주 앉은 사람들은 어디 눈 둘 곳을 몰라 건너편 천장모서리에 다닥다닥 붙은 광고지를 보는가 하면 남의 신발을 샅샅이 훑어보기도 한다. 눈이 마주치면 빤히 쳐다보는 「뻔뻔족」도 있다. 할머니 한 분이 열린 문으로 들어오시자 일순 앉은 사람들의 시선이 황망히 줄달음을 친다. 이미 노인네 푸대접을 받아 본 덕인지 문 앞에 바짝 붙어 서신 모습이 민망할 따름이다.

아이를 방패 삼아 나만이 당당한 시선으로 적당히 양보해야 할 사람을 가려내는 중이다. 오십 중반은 되었을 아저씨 한 분이 벌떡 일어서시며 걸걸한 목소리로 야단을 치시자 기다렸다는 듯 숨 죽였던 긴장이 유리 깨지듯 와장창 소리를 낸다. 적당히 어려 보이는 여학생에게 자리를 양보하라고 하시자 대뜸 학생이 실눈을 뜨고 반항할 기세를 보인다.

당황한 아저씨 얼굴에 재빨리 옆자리 총각이 할머니를 자리에 앉힌다. 문 이쪽에서 저쪽까지 사람들 시선이 아저씨와 여학생에게로 쏠렸다. 자리로 돌아가신 아저씨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 있다. 할머니는 중얼중얼 싫은 티를 내는 여학생을 달래느라 진땀을 빼시고 모른 척 고개를 돌리신 아저씨를 다들 걱정스런 표정으로 본다. 전동차 안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긴장에 갇혀 있다.

학생에게도 아저씨에게도 당연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도 자리를 양보하라고 강압해서는 안되고 아버지같은 분의 충고에 대들어서도 안되는 것이다. 다만 침묵하고 있는 사람들의 용기 없음과 무관심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아이를 방패 삼아 앉은 채로 나는 지금 친구 집을 가고 있다. 지하철은 이미 그 소란을 잊고 있지만 나는 집에 돌아가는대로 부모님께 앞으로는 버스를 타시라고 말씀드릴 생각이다. 하지만 버스도 똑같은 사람들이 타고 있을 터이다. 이제 우리의 부모님들은 무얼 타고 다니셔야 할지.

/박은영·서울 강남구 대치4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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