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9일 내각을 전격 경질함으로써 이미 만성화한 특유의 「불가측성」스타일을 또다시 유감없이 발휘했다.옐친 대통령의 돌출 행동에 익숙해져 있는 러시아 정계와 국제사회는 3개월만에 단행된 세르게이 스테파신 총리의 해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러시아 언론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 지명자 역시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 지에 회의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서구제국과 국제통화기금(IMF) 등 채권기관도 러시아의 경제 악화를 방지하기 위해 반응을 자제하고 있다.
옐친의 속마음 반(反)옐친 진영과 정치 평론가들 사이에서 옐친 대통령의 최대 관심사는 일반적으로「퇴임 후」로 간주된다. 따라서 푸틴 총리지명자의 후계구도에 이상기류가 감지되면 옐친 대통령은 가차 없이 비상수단을 강구할 수 있다고 모스크바 소재 정치기술센터의 보리스 마카렌코 부원장은 밝혔다.
러시아 언론들도 최근 악화하고 있는 체첸 사태나 크렘린이 추진해온 인근 벨라루스공화국과의 합병 등이 헌법 개정과 비상사태 선포 등을 통한 대선 연기(내년 7월 예정)의 명분으로 작용할 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베레조프스키의 암시 크렘린의 이너서클 멤버이자 물주인 재계 거물 보리스 베레조프스키는 9일 인테르팍스 통신과의 회견에서 『옐친 대통령의 전략은 아직 다 공개되지 않았다』며 『스테파신 총리 해임은 권력 재창출과 대의회 투쟁 전략의 일부분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2~3주안에 이번 결정의 의미가 명확히 드러날 것』이라고 말해 예의 옐친식 후속조치가 뒤따를 것임을 시사했다.
옐친의 기행 전력 겐나디 주가노프 공산당수가 『총리를 장갑 갈아 끼듯이 바꾸는데 누가 심각하게 생각하겠느냐』고 꼬집을 만큼 러시아는 옐친 대통령의 심상치 않은 정치 행태에 시달려왔다. 옐친 대통령 스스로 지난해 10월 『일상의 직무수행은 포기했다』고 말할 정도다.
94년 아일랜드 방문 때 술에 만취해 비행기에서 내리지 못한 것을 비롯해, 97년 일방적 핵무기 감축안 발표와 지난 4월 코소보 사태때 3차 세계대전 경고로 참모들이 서둘러 무마에 나서야했다. 그는 더욱이 심장 척추 간 폐 신장 위장 등 온갖 내장기관에 이상을 일으켜 그의 「종합병원성」 신체상태는 국민들의 농담거리가 된 지 오래다. 최근 들어 대부분의 시간을 요양지에서 보냈으며 만나는 사람이 가족을 포함한 이너서클 멤버로 제한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김병찬기자 bc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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