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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잡지 '베스트셀러'] 문학을 먹는다 맛있게 멋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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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잡지 '베스트셀러'] 문학을 먹는다 맛있게 멋있게

입력
1999.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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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년전 쯤? 글께나 쓴다는 젊은이들에게 「학원」지에 작품이 실리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었다. 60~70년대, 학원 문학상을 통해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하던 때. 학원지에 실린 글을 보고 편지를 보내, 서로의 문재(文材)를 칭찬하고 문학에 대한 열정을 뿜어내던 시절. 옆구리에 「학원」지를 낀 것만으로 또래와는 다른 「귀족」 티를 내던 시절이기도 했다.『과거엔 문학 소녀라면 동경의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문학소녀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따돌림의 대상이죠』(박민규 「베스트셀러」 편집장). 조금 심하게 말한다면 요즘 글쓴다고 고뇌하는 청소년들은 「왕따」당하기 십상이다.

물론 아직도 몇십 만 부 팔려나가는 시집이 있고, 소설 역시 베스트셀러의 많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창작의 뿌리를 이루고, 많은 문인들이 재주를 뽐내던 문학 잡지의 형편은? 인기가 시들해졌다고, 90년대 들어서 특히 초라해졌다면 너무 비관적인가.

문학지 설 자리가 없다

월간 문학지들이 참패를 면치 못하고 있다. 월간 문학지로 전통을 자랑하는 「현대문학」(55년 창간), 한때 5만 부를 팔아 기네스 북에 오를 정도의 기록이라고 평가받던 「문학사상」(72년 창간). 이 두 잡지는 아직도 꽤 많은 정기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시장의 위축에서 예외는 아니다. IMF사태 이후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판매고는 IMF 이전보다 3분의 1 이하로 떨어졌다.

계간으로 나오는 문학지들 역시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창작과비평」이 그나마 1만명 가까운 정기 구독자를 확보해 명성을 유지하고 있을 뿐 다른 문학지들은 사정이 상당히 어려운 형편이다.

『지금 그나마 팔리는 것은 정기구독자 덕분이다. 젊은 사람들은 문학잡지를 잘 읽지 않는다. 영화나 비디오 따위 대중문학이 더 쉽게 감동과 자극을 주는 게 사실 아닌가』 한 월간 문학지 편집자의 말은 문학지의 위축이 더 깊어질 것임을 가늠케 한다.

브나로드 전략과 전복 정신

지난해 11월 창간해 이달까지 모두 10호를 낸 문학잡지 「베스트셀러」. 그들은 「문학은 이제 문화의 중심이 아니다」는 말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잡지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시인 오선홍씨는 무언가 다른 문학잡지들을 만들어야겠다고 늘 꿈꾸어왔다. 10년 가까이 직업으로 삼았던 카피라이터를 그만 두고 새로운 문학지를 만들겠다고 덤빈 것이 지난해 4월.

『한국의 문예지들은 100년의 역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세로 쓰기에서 가로 쓰기로 편집이 바뀐 것을 빼곤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그래서 오씨는 역시 광고계에 있던 후배 박민규(편집장), 염정선(디자인 실장)씨 부부와 함께 그야말로 「패션지」같은 문학지를 만들기로 했다. 패션 잡지 같은 표지와 세련된 편집은 수십 년 이어 온 문학잡지의 틀을 깨는 과감한 시도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문학지들이 괄호 밖으로 몰아내는 대중문학을 이른바 순수문학과 함께 과감하게 수용했다. 또 평론은 절대 싣지 않기로 했다. 대중에게 다가가는 「맛있는 문학잡지, 멋있는 문화잡지」가 되기 위해.

「베스트셀러」는 판형 자체를 아예 일반 잡지 크기로 잡고, 과일과 꽃을 소재로 화려하면서 단정한 사진으로 표지를 꾸미고 있다. 강렬하면서 분위기 있는 인터뷰 사진, 단편소설 같은 만화도 들어간다. 시각적인 것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박상륭의 인터뷰와 무협소설이 한 권에 실립니다』 문학의 격조를 잃지 않으면서 대중에게 파고 들어가는 「브나로드」(Vnarod:1870년 러시아에서 농민을 주체로 사회개혁을 이루고자 일어났던 계몽운동) 전략이다.

「베스트셀러」의 또 다른 미덕은 전복(顚覆). 「10원 문학상」은 창간과 함께 공모를 시작해 이달 말로 마감하는 희한한 문학상이다. 좋은 작품에 물론 상을 주지만 수천만원의 상금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상금 10원. 대신 수상작을 책으로 내면서 지난해 출판업계가 기록한 최고 인세(약 10%)에 3%를 더 올려 작가에게 주기로 했다. 『당선 작가는 문학상의 상금 수상으로 끝나고 그것을 책으로 낸 출판사가 더 많은 이득을 보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작품이 많이 팔리면 팔릴수록 작가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는 「정직한」 문학상을 만들겠다는 뜻이다.

대중적인 성공, 그 미래는?

지난해 11월 창간호 5만 부 가량. 10호까지 내면서 월 평균 판매 부수 2만∼2만 5,000부를 기록했다. 대성공이라고 말하기는 섣부르지만, 그래도 성공은 성공이다. 어려운 출판시장에서 몇 푼이지만 돈도 남겼으니 말이다.

이제부터가 문제다. 『순수문학의 눈높이를 조금 낮추고, 대중문학의 품격을 높이는 작업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런 틈새를 노렸다』 하지만 오씨는 아직까지는 그것이 불가능한 작업이라고 평가한다. 『청탁으로 들어오는 글들이 그런 간격 좁히기에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잡지 속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은 마치 물과 기름이 겉돌 듯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있다. 『잡지가 너무 산만하다』는 평가도 있다. 대중화에는 성공했지만 그 인기가 얼마나 계속될는지. 생겼다 없어지고, 또 다시 생겨나는 패션지와 다르기 위해 「베스트셀러」가 독자들의 욕구를 어떻게 읽어나갈지 궁금하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이래서 다르다] 발만나온 인터뷰사진 SF소설·광고이야기…

창간호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몇 호 지나고 난 뒤 「베스트셀러」가 가장 신경 쓰는 고정란은 「인터뷰」이다. 처음 인터뷰는 소설가 박상륭씨. 그리고 이인화, 이문열, 김남조, 이어령, 김춘수, 신경숙, 김정란, 구효서, 이인성, 하성란씨를 차례로 소개했다.

인터뷰 내용도 내용이지만 문인들의 모습을 잡아 내는 독특한 사진 쓰기가 문단에서 화제이다. 시인이면서 아마추어 사진가인 편집장 박민규씨등 몇 몇 사진가가 찍는 사진들은 「유사 증명사진」 수준인 다른 문학지의 작가 사진과는 엄청나게 다르다. 인터뷰 사진에 얼굴 대신 발만 나온 것이 있을 정도로 파격적이다. 젊은 작가들 가운데는 사진 한 장 얻고 싶어 인터뷰나 작가 소개를 바란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기도 한다.

내용도 만만치 않다. 4월호의 시인 김춘수 인터뷰. 『젊은 시인들, 또 앞으로 시를 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말은?』 『…자기 세대에 충실해라, 거짓말하지 말고 눈치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까 제가 키치(Kitch)세대들의 시를 제 입장에서 언짢게 얘기했지만 그 세대들이 그럴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렇게 써야 하는 겁니다.…그 어떤 줄 뒤에도 서지 마십시오. 눈치를 보는 자는 시인이 아닙니다』

순수문학은 이밖에도 「이달의 시인」 「초대작가」 「나의 사랑, 나의 베스트셀러」 등을 통해 다루어진다. 대중문학엔 바둑,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를 소재로 삼는 「무협소설」 「SF 소설」이 소개된다. 단편 만화, 음악, 광고에 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또 하나 눈에 띄는 특집은 어린이들의 번뜩이는 감성을 소개하는 「어린 왕자를 찾아서」. 창간 이후 매달 150통 정도 오는 독자 편지와 투고 가운데서 찾아내는 글에는 「작품」도 더러 있다. 8월호의 독자 투고는 초등학교 1학년 여학생 김정빈 양의 「류시원 오빠」를 소개했다. 「류시원 오빠는 좋겠다 여름에 시원아 봄에도 시원아 오! 시원아 아이고 시원하겠다 나도 이름이 김바람이었으면 좋았을텐데…」 자신의 이름이 남자 이름같아 늘 못마땅해 하던 한 어린이의 일기다.

/김범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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