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성의 칼날찰스 길리스피 지음·이필렬 옮김
528쪽. 새물결. 1만8,000원
토머스 쿤의 명저 「과학혁명의 구조」에 공감하는 독자라면, 찰스 길리스피(미 프린스턴대 명예교수)의 「객관성의 칼날」을 비판적으로 읽게 될 것이다. 과학사를 제도나 사회적 연관 속에서 파악하는 쿤과 달리, 길리스피는 과학을 정치적·사회적 산물로 보는 데 반대한다. 그렇다고 과학의 완벽한 순수성을 믿는 결벽증 환자는 아니다. 과학사가로서 그의 입장은 과학을 「과학의 내적 요소와 외적 요소의 교차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객관성의 칼날」은 이런 시각에서 쓰여진, 근대과학 사상사의 고전이다. 60년 처음 출판됐으며 번역본은 90년 개정판이다. 부제는 「과학 사상의 역사에 관한 에세이」.
길리스피는 과학의 본질을 「객관성」으로, 근대과학사를 객관성의 전진으로 파악한다. 이 책은 갈릴레이에서 아인슈타인까지, 과학이 기존의 잘못된 통념을 깨고 어떻게 전진해왔는지 밝힌다. 객관성은 칼날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신비주의나 형이상학, 낭만적 해석을 잘라버린다. 주관적 통찰 대신 객관적 분석이 과학의 언어로 등장하자 사람들은 그 명료함에 반했지만 동시에 그 비인간적인 냄새에 반발을 느꼈다. 길리스피 자신도 객관성의 칼날에 「가혹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있다.
그는 이 책의 제5장 「과학과 계몽사조」에서 과학의 합리주의에 거부반응을 일으킨 낭만주의자들의 반감을 흥미롭게 전달하고 있다. 뉴턴의 광학이 빛과 색채의 성질을 밝히자 괴테는 뉴턴을 「빛을 붙잡아서 비틀고 잡아 당기고, 가엽게도 한껏 구부려서는 아주 못쓰게 만드는, 열렬한 미신숭배자」로 비난했다. 반면 뉴턴과 동시대의 영국 시인 알렉산더 포프는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을 이렇게 칭송했다. 『자연과 자연의 법칙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네/ 그러나 신이 「뉴턴을 존재하게 하라」고 말하자/ 세상의 모든 것이 밝아졌노라』 뉴턴은 「밝아짐」을 뜻하는 「계몽」시대의 출발점이다.
「객관성의 칼날」초판이 나오고 2년 뒤인 62년 길리스피의 미국 프린스턴대학 동료인 쿤이 「과학혁명의 구조」를 출판, 과학의 객관성에 의문을 던졌다. 최근 들어 서구지성은 주관과 객관을 분리하는 근대적 합리성의 개념 자체에 회의를 던지고 있다. 하지만, 길리스피는 여전히 과학의 힘을 믿는다. 90년 개정판 서문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과학은 전지전능하지는 않지만 무지, 독단, 약탈에 맞서는 유력한 무기』이며 『비록 지식이 위험할지라도 무지는 더욱 위험한 것이며, 과학에 수반된 악을 감소시키는 것은 과학의 후퇴나 퇴보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을 보다 잘 이끌어가도록 하는 것이다』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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