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자 한국일보 31면에 실렸던 「이문열 삼국지 오역 100여 곳」 기사를 보고 이문열씨가 반론을 보내왔습니다. 지난 기사에서 번역비평가 박정국씨는 이씨가 민음사에서 출간한 「평역 삼국지」(10권) 해석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공자께서는 자신의 허물을 지적받자 말씀하셨다. 『나는 행복하구나. 허물이 있으면 사람들이 반드시 알아보니(丘也幸 苟有過 人必知之)』
내 어찌 감히 그같은 성인의 마음가짐을 흉내낼 수 있으리오마는 이번 박정국씨의 오래 전부터 거듭돼 온 지적에는 먼저 감사부터 들지 않을 수 없다. 허물을 지적하면서도 가장 가벼운 것을 그것도 최소한으로 줄여 해주었기 때문이다.
박씨의 관점을 엄밀히 적용시킨다면 졸저 「평역 삼국지」에 있는 오역이 어찌 백여 곳 뿐이겠는가. 내가 당장 짚어낼 수 있는 것만도 그 백배는 넘을 듯하다. 우선 첫 머리 서시(序詩)부터가 그렇다. 「浪花淘盡英雄」을 「부딪혀 부서지는 그 물결에 씻겨 갔나, 옛 영웅들의 자취 찾을 길 없네」라고 터무니 없는 번역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 멋대로 덧붙인 의미야 시를 번역하다보니 그리 되었다 쳐도 「淘」를 「씻겨갔나」로 한 것은 여지없는 오역이 될 것이다. 원래 「淘」는 「쌀을 인다」라고 할 때의 「일 도」로 씻어내는 것과는 다른 뜻이다.
본문으로 들어가면 더욱 심하다. 무엇보다 시작에서 한 오백 매 가량은 원본 어디에도 없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건 오역 정도가 아니라 정중한 번역에서는 있을 수 없는 해괴한 첨가다. 뿐인가, 각 국면마다 돼먹잖은 평(評)이 길게 달려있는데 그 또한 원본 어디에도 없다. 함부로 빼먹은 것도 많다. 특히 제갈량이 죽은 뒤의 이야기는 원작의 거의 삼분의 일로 줄여버렸다. 세상에 이따위 엉터리 번역이 어디 있는가.
박씨가 워낙 점잖고 겸손한 경상도 양반이라 그렇지, 모진 사람이 마음 먹고 덤비면 졸저 「평역 삼국지」가 원본에 비해 번역이 잘못된 것만으로도 한 권의 책을 엮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졸저 앞에 붙은 「평역(評繹)」이란 말 뜻이다. 「평하여 엮었다」는 뜻으로 어디에도 번역을 강조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번역 문제를 따지자면 「원본(元本)」이니 「정역(正譯)」이니 하고 원전의 충실한 번역을 강조한 책들을 대상으로 하는 편이 온당할 것이다.
졸저 「평역 삼국지」는 그런 소수의 고전문학도를 위한 번역 교본이 아니다. 고전을 풀어서 나름의 평과 해석을 곁들여 엮은 대중적인 읽을 거리다. 큰 흐름만 바꿔놓지 않는다면 소소한 자구의 해석은 손쉽게 처리해도 된다는 게 「평역 삼국지」를 쓸 때의 내 소박한 마음가짐이었다. 만약 박씨의 주장을 그대로 적용시킨다면 전 시대 우리나라 사람들도 대부분 그 번역판을 읽었을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의 「삼국지」나 근래에 쓰여진 천 천(陳舜臣)의 「비본(秘本) 삼국지」도 나와서는 안 될 책이 된다.
그런데 박씨가 예로 든 것들 가운데는 시비를 위한 시비처럼 들릴 정도로 큰 흐름과는 무관한 자구 해석이나 뉘앙스의 문제를 따지고 드는 것들이 많다. 생각해 보라. 명색 한문을 좀 읽었다는 사람치고 동(洞)에 동굴의 뜻이 있음을 모르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그 동굴의 뜻은 집단 거주지 혹은 취락의 뜻으로 전화되었고 삼국지에서도 지리적 상태보다는 그런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온당하다 싶어 동굴을 강조하기보다는 마을이나 부락의 의미로 썼다.
허물을 지적해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귀중한 신문 지면을 빌려 대중에게 공개할 때는 사회적 실익도 따져보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거기다가 자신이 의지하고 있는 지식이나 학문이 충분히 객관적 검증을 받은 것이며 남의 오류를 바로잡는데 확실한 근거가 될만한 것인가를 가만히 돌이켜 볼 겸손이 있으면 더욱 존경스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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