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문헌이 있는 나라는 관례에 따라 외국 고유명사를 표기하고 발음한다. 우리는 한자를 받아들여 쓰기 시작하면서 중국어의 한자음을 우리 국음으로 발음해왔다. 우리 국어에서 「揚子江」은 「양쯔강」이 아닌 「양자강」으로 발음해야 하는데도 최근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오랜 관례를 깨고 중국 현지음으로 표기하거나 발음해 큰 혼란과 불편을 야기하고 있다. 단순한 불편과 혼란쯤이면 참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역사와 문헌, 그리고 전통의 혼선 등 언어혼란으로 인한 후유증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독일 라인강변에 「쾰른」이라는 도시가 있다. 프랑스 사람들은 그 도시를 「꼴로뉴」라고 부른다. 그 도시가 옛날에 라틴민족의 식민지였기 때문이다. 독일사람들로서는 자존심이 상할 수 있는 명칭인데도 프랑스말로 소개할 때는 자신을 「꼴로뉴」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을 자주 들을 수 있다. 또 독일 남쪽에는 「뮌헨」이라는 도시가 있다. 독일사람들이 영어를 배울 때 이를 「뮤니크」라고 발음한다. 영국과 미국사람들이 그렇게 부르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고 외국 고유명사를 발음하는 나름대로의 원칙이 있고 외국도 그 관례를 존중해주는 것이다. 독일이나 프랑스 등은 몇백년의 전통을 존중해서 이렇게 외국의 관례를 따라준다. 우리는 몇백년간 「양자강」으로 불러왔고 문헌상 표기도 대부분 「양자강」이다. 또 중국의 남쪽지방에서는 「양쯔강」이라 발음하지 않고 극히 일부에서만 이렇게 부른다. 게다가 우리의 발성능력으로는 중국의 실제발음에 가깝게 발음하지 못한다.
우리는 「삼국지연의」 등을 통해 이미 우리 나름대로의 중국 인명과 지명을 많이 알고 있다. 그런데도 궂이 현지음 원칙을 고수할 경우 가령 귀중한 역사기록인 「조선실록」에 나오는 인명과 지명이 생소해지고, 뜻의 혼선을 가져올 수 있다.
역사와 문화가 있는 민족의 귀중한 문헌들을 무색하게 만들고 후손들과의 정신적 단절을 가져올 수도 있는 이런 변혁을 어떤 기준으로, 누구를 위해 강행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우선 신문표기부터 「江澤民」은 「장쩌민」이 아닌 「강택민」으로, 「朱鎔基」는 「주룽지」가 아닌 「주용기」로 시급히 바로잡아 주길 바란다.
/박찬기 한국어문회 회원 고려대 독문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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