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레스트산에 오른 기분이었어요. 두 발로 선다는 게 정말, 정말, 이런 것이구나 싶었어요. 제 힘으로 문밖에 나가보게 될 줄이야…. 그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전 처음 혼자 벽에 기대 들이마시는 그 상큼한 공기…. 평생 못잊을 겁니다』조채숙(曺彩淑·17)양은 올 2월21일, 「세상이 달라졌던 날」의 경험을 이렇게 회고한다. 이날 소녀는 태어난지 17년만에 처음으로 두 발로 섰다. 채숙이는 선천성 뇌성마비 1급 지체장애인. 팔다리가 비틀어져 옴짝달싹 못하고 대소변도 어머니가 받아줘야했다. 이런 소녀를 일으켜 세운 사람은 이선희(李善姬·50·경북 영천 금호초등학교 교사)선생님.
운명적인 만남은 97년 3월4일이었다. 이해 금호초등학교에 부임, 장애인학생을 가르치는 특수학급을 맡아 이날 처음 채숙이네 집을 찾은 이 교사는 『조채숙? 이름 참 예쁘네. 난 이선희라고 해. 앞으로 잘 지내보자』고 했다. 인자했고 「억수로」 자상했다. 뭔가 찌르르 주파수가 통했다. 이때부터 이 교사는 매주 화·금요일 오후 두세시간씩 채숙의 집으로 갔다.
『첫날 가보니 엎드려서 글씨를 쓰고 있었습니다. 「너,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거야? 평생 엄마 아빠한테 의지하면서 살래?」라고 다그쳤지요. 바로 그날부터 억지로 책상에 앉혔어요. 엎드려서 책상을 잡고 주변을 한 바퀴 도는 훈련부터 시켰습니다』 이 작은 한 바퀴를 도는 데 30분이 걸렸다. 이 교사는 초시계까지 들고와 시간을 재며 재촉했다. 대소변 처리도 훈련시켰다.
『이 선생님은 재활교육전문가라 요령이 철저했어요. 「이렇게 해야 걸을 수 있다. 헬렌 켈러는 앞도 못보고 소리도 못듣고 말도 못했다. 넌 그보다 백배 낫다. 세상을 넓게 좋게 밝게 생각해라」고 누누이 말하면서 손발지압기와 각종 특수운동기구를 사다 주고 끝없이 움직이라고 했어요.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나 교양프로를 담은 비디오 테이프를 갖다 준 것만도 100개가 넘어요』 채숙이 어머니 정손분(鄭孫分·45)씨는 이렇게 말하며 『죽어도 선생님의 은혜는 못 잊을 것』이라고 울먹였다.
불가능은 현실이 됐다. 채숙이는 2년만에 혼자 힘으로 섰다. 물론 처음에 그 시간은 단 몇초에 불과했다. 그러나 차츰 30초, 1분, 2분으로 늘었고 지금은 혼자 10분 정도 서서 열 걸음 정도는 걸을 수 있다. 특수교육 전문가들도 『의학적으로 희귀사례』라고 한다. 대소변도 혼자 보고 라면도 혼자 끓여먹을 정도가 됐다. 학교에 나가지는 못하지만 이제 금호초등학교 6학년2반 29번으로 등록돼 중학교에도 진학할 수 있게 됐다.
이 교사의 가르침은 컴퓨터와 글짓기에 집중됐다. 시와 소설에 재능이 있는 채숙이가 작가로 성장, 세상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채숙이의 희망이기도 하다. 남자 친구를 사귀는 것과 함께. 그 덕에 채숙이는 벌써 시집 두 권과 단편소설 4권을 썼고 올 6월 전국장애아백일장에서는 장려상을 타기도 했다.
『한 것도 없는데 부끄럽다』는 이 교사는 2년전부터 대구 효성가톨릭대 대학원에서 상담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다. 『지식만으로 할 수 있는 상담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정년퇴임하면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주는 상담을 통해 뭔가 봉사하고 싶어요』
고종달(高鍾達·57) 금호초등학교 교장은 『가정방문을 갔을 때 채숙이가 환호하며 이 선생님을 맞이하는 모습을 보고 「아, 정말 잘 하시는구나」하고 느꼈다』며 『생색내지 않으면서 끈기있게 자신의 역할을 하시는 분』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의 감동적 얘기는 채숙이가 교육부 주최 「고마우신 선생님 체험수기 공모」에 「나의 설리번(헬렌 켈러의 스승) 선생님」으로 응모, 7일 최우수상에 선정되면서 알려졌다.
이광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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