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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JP과 韓明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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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JP과 韓明澮

입력
1999.08.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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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각제 연내개헌이 유보되는 와중에서 김종필총리(JP)에 대한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고 있다. 김영삼·김대중씨가 「민주화의 상징」이라면 그는 자신의 정치적 이미지를 「내각제 신봉자」로 채색해 지금까지 정치곡예를 계속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40년 가까이 정치무대에서 장수하고 있는 그에겐 「영원한 2인자」 「정치풍운아」 「처세의 달인」이라는 엇갈리는 평가가 따라 다닌다. 그는 조선 초기의 풍운아였던 한명회(韓明澮)와 유사한 점이 많아 훗날 어떤 역사적 평가를 받을지 주목된다.■JP는 35세에 5·16쿠데타를 일으켰고, 한명회는 38세에 수양대군의 심복으로 계유정난을 일으켜 1등 공신이 됐다. 3대에 걸쳐 킹메이커 역할을 했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JP는 박정희정권 창출에 이어 YS와 DJ가 대권을 잡을 수 있도록 「받침목」역할을 했다. 한명회는 계유정난으로 단종의 왕위를 찬탈해 세조를 등극케 했고, 예종이 즉위하자 남이장군의 옥사를 일으켜 다시 정권을 잡았다. 그는 예종이 즉위 1년2개월만에 죽자, 자신의 사위인 자산군을 왕위(성종)에 오르게 했다. 이들은 3대에 걸쳐 권력 2인자 자리를 지켰다. JP는 박정권아래서 당의장과 총리를, YS정권에선 당대표를, DJ정권에선 다시 재상자리에 올라 실세총리가 됐다. 한명회도 세조·예종때 두차례 영의정을 지낸데 이어 성종때는 영의정에 병조판서까지 겸임한 최고 실권자였다.

■두사람은 30여년간 권력의 핵심을 넘나든 풍운아 였지만 정치역정도 그만큼 순탄치 않았다. JP는 박정권아래서 권력의 부침을 겪은데 이어 80년초에는 신군부에 의해 부정축재자로 몰렸고, YS정권에선 팽(烹)당했으나 충청도를 기반으로 신당(자민련)을 만들어 오뚝이처럼 재기했다. 세조에게 총애를 받았던 한명회도 이시애의 난이 일어나자 역모혐의로 한때 옥살이를 겪었다.

■한명회는 35년간 권력을 떠난 적이 없는 책략가 였지만 연산군때 부관참시까지 당했다. JP는 최근 자민련 의원들과의 모임에서 『16대총선후 내각제 개헌을 재추진하고 정계를 떠나지 않겠다』고 언급했다. 훗날 그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더라도 「내각제는 사실상 물건너간 것」이라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내년 총선에서 그에게 어떤 심판을 내릴 지 궁금하다.

/조명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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